아파트 고층일수록 공기 좋다? 미세먼지 7·8층이 1층보다 나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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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파트 층수별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더니 저층 구간(1~10층)이 고층 구간(11~20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기상 상황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아파트 층수별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더니 저층 구간(1~10층)이 고층 구간(11~20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기상 상황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아파트 1층부터 20층 중에서 몇 층이 미세먼지가 가장 많은지 실험해 주세요!” (임창*)

20층 아파트 미세먼지 재보니 #1층 46㎍, 8층 54㎍, 20층 40㎍ #중간 층이 되레 더 높게 나와 #“10층 이상 농도 낮지만 안심 못해 #바람 불면 고층이 더 나쁠 수도”

중앙일보의 미세먼지 뉴스·정보 전문 디지털 서비스인 ‘먼지알지’에 임모 독자가 아파트 층수별로 미세먼지 농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질문을 보내왔다.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던 지난달 21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고층 아파트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중국발 황사의 영향으로 수도권에 미세먼지 예비저감 조치가 내려진 지난달 21일 진행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1층부터 20층까지 이동하면서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를 이용해 공기 질을 관측했다. 두 가구가 마주 보는 계단식 아파트에서 한 층씩 올라가며 창문을 통해 바깥의 미세먼지를 측정했다. 측정 항목은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습도, 온도 등이다.

먼저 아파트 건물 외부에서 미세먼지 수치를 쟀다. 미세먼지(PM10) 농도는 ㎥당 50㎍이었으며 초미세먼지(PM2.5)는 46㎍이었다. 온도는 24도, 습도 49%다. 아파트 바로 앞은 지상 주차장으로 차들이 주차해 있다. 아파트 앞 80여m 거리에 4차선 도로를 두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층씩 올라간다고 해서 미세먼지 농도가 눈에 띄게 내려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래층보다 위층에서 농도가 더 높게 나오는 구간도 있었다. 특히 2층부터 10층까지 PM10과 PM2.5 농도는 각각 50~56㎍, 49~54㎍으로 1층 지상에서 잰 수치(각각 50, 46㎍)보다 같거나 높았다.

기상 상황, 도로 인접도 등 따라 달라 

아파트 1층~20층 미세먼지 어디가 나쁠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아파트 1층~20층 미세먼지 어디가 나쁠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층수와 농도가 반비례하지는 않았지만, 고층으로 갈수록 대체로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저층(1~10층)과 고층(11~20층)의 미세먼지 농도 평균치를 비교했더니 저층은 50.2㎍(이하 PM2.5 기준) 고층은 43㎍이었다. 미세먼지 농도는 오히려 중간층에서 더 심했다. 7~10층의 PM2.5는 50~54㎍이었다. 이날 오전 8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미세먼지 농도는 21㎍, 일평균 수치는 26㎍이었다.

같은 날 다른 건물에서도 실험을 진행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14층 높이 빌딩 1층부터 7층까지 초미세먼지(PM 2.5) 평균은 54㎍, 8층부터 14층까지는 42㎍이었다. 농도 차이가 28.6%였다. 고양시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저층의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았다. 같은 시간 서대문구 대현동 도시대기측정소에서 관측된 미세먼지 농도는 32㎍이었다.

우정헌 건국대 기술융합공학과 교수는 “방충망은 먼지 포집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한 아파트의 2·8·12층에 설치된 방충망을 비교했더니 확실히 고층이 저층보다 먼지가 적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층에 있으니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최용석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대기질모델링팀장은 “원론적으로는 높이 올라가면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높은 곳의 미세먼지 농도가 낮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기상 상황과 바람이 부는 형태 등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바람은 고도가 높아지면 더 세게 불기 때문에 고층은 일반적으로 저층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낮게 나온다. 저층보다 배출원도 적다”며 “하지만 미세먼지가 나쁜 날은 대기가 정체된 경우가 많아 바람이 불지 않는다. 평소와 다르게 고층도 미세먼지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도시대기측정소 1.5~10m 높이에 설치 

지난달 25일 아파트 1층에서 측정한 초미세먼지(PM2.5)는 ㎥당 46㎍, 20층은 40㎍이었다.

지난달 25일 아파트 1층에서 측정한 초미세먼지(PM2.5)는 ㎥당 46㎍, 20층은 40㎍이었다.

외부에서 바람을 타고 미세먼지가 이동할 때는 고도가 높은 곳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기가 정체된 상태에서는 특정 높이에서만 미세먼지 농도가 높게 나올 수도 있다. 도로변에 있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자동차 배기가스 등의 영향을 받아 저층에서 농도가 높게 나오기도 한다. 워낙 변수가 다양해 단순히 높이별 미세먼지 농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면 높이와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인다. 최 팀장은 “PM2.5 이하 미세한 물질은 고층이라고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안 좋은 날에는 공기질 관리를 특히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높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실시간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재는 측정소는 설치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도시대기측정소의 시료 채취구는 1.5m부터 10m 이내에 설치한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측정망 설치·운영지침에 따르면 이 높이는 ‘사람들이 호흡하고 생활하는 높이를 고려한 기준’이다. 아파트처럼 지상 10m 이상의 높이에서 사람이 다수 생활하고 있을 경우 등에 한해 예외를 허용한다. 하지만 이런 예외의 경우에도 최고 20m를 넘어서는 안 된다. 도로변 측정소는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사람에게 미치는 실질적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최고 15m를 넘지 않는 곳에 측정망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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