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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오류…2년 소송 끝 462명 구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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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소송이 제기됐던 지방 9급 공무원 한국사 문제. [사진 행전안전부]

2017년 소송이 제기됐던 지방 9급 공무원 한국사 문제. [사진 행전안전부]

공무원 필기시험 문제의 오류가 인정돼 수험생 400여 명이 구제 기회를 얻게 됐다. 정부가 문제 오류를 인정해 대규모로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사 문제 잘못 출제됐다며 소송 제기해 #364명 추가 면접…대규모 추가 시험 첫 사례 #“기존 합격자 신분 유지…당락 바뀌지 않아”

행정안전부는 2017년 12월 치른 지방 공무원 9급 공채 한국사 문제 중 한 개 문항의 정답을 정정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시·도에 통보했다고 7일 밝혔다. 추가 합격자는 98명, 추가 면접 기회를 얻은 수험생은 364명이다.

이번 조치는 서울시 사회복지직 9급에 응시했던 수험생 A씨가 서울시 제1인사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한 데 따른 것이다. 시험은 지방 9급 공무원 추가 채용을 위해 전국 17개 시·도에서 치러졌다. 문제 출제는 인사혁신처가 담당했다.

당시 A씨는 한국사 시험 중 5번 문항이 잘못 출제됐다며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문제는 『삼국지』에서 고구려를 설명하는 대한 지문을 제시하고, 4개의 보기 중 고구려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고르는 내용이었다. 피고인 서울시 측은 정답을 1번 ‘전쟁에 나갈 때 우제점(牛蹄占·소의 발굽을 지져 점을 보는 행위)을 쳐서 승패를 예측했다’라고 공개했다. A씨는 “1996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집필한 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고구려에서도 부여와 같은 점복의 풍습이 있었다’고 기재된 점 등을 보면 1번도 고구려에 대한 옳은 설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측은 재판에서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관한 신빙성이 높은 사료로 평가받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우제점을 쳤다는 내용은 고구려가 아닌 부여에 관한 설명으로 기재돼 있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고구려에 우제점 풍습이 존재했는지는 학계에서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수험생으로선 타 문헌에 근거해 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문제가 ‘정답 없음’으로 처리된다면 피고는 한국사 점수를 다시 산정해야 한다. 따라서 불합격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서울시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재채점이 이뤄지게 됐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번 판결에 따른 재채점 대상은 11만2571명이다. 정답이 정정돼 필기시험 합격선 이상(최종 합격자의 약 1.5배)이 되는 응시생은 추가 합격자가 돼 면접 기회를 얻게 된다. 면접 대상 인원은 364명이다. 경기도가 121명으로 가장 많고 전남 34명, 충남 33명, 서울 21명 등이다. 각 시도는 조만간 시험 계획을 공고한 뒤 다음 달 중으로 면접시험을 치를 계획이다. 추가 면접시험은 2017년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된다. 이들이 면접에서 ‘우수’ 등급을 받으면 최종 합격한다. ‘보통’ 등급을 받을 경우 각 시도별 채용 계획에 따라 필기 성적순으로 합격자를 가린다.

2017년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에서 ‘보통’ 평가를 받았지만 필기 성적에 따라 탈락한 응시생 98명은 합격자로 선발된다. 당시 제대로 정답 처리가 됐더라면 합격했어야 하는 경우다.

다만 수험생 간 당락이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채수경 행안부 지방인사제도과장은 “문제 오류를 정정하기 이전에 합격해 공무원으로 임용된 경우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다”며 “공적 기관의 견해 표명은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신뢰보호의 원칙’에 기반한 것이며 법률 자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기관의 인재 선발 과정에서 허점을 드러냈을 뿐더러 행정부가 사법부 판단에 의존하면서 수백 명의 국민이 2년 가까이 직접 피해를 입었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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