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바우하우스의 부처’ 클레, 재밌는 예술교육 틀 다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59호 18면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22>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고 한다. 하지만 게임 중독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면 된다! 게임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도 학교에서 가르치면 무조건 싫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학교’는 불가능한 걸까?

선생이 일방적 계몽 역할서 벗어나 #학생과 상호작용 해야 즐거운 학습 #클레, 정치와 거리 두고 작품 몰두 #학생들 독특한 예술세계 보며 배워 #21세기 교육도 사제간 ‘협상’ 필요

원래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어원부터 그렇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의 school, 혹은 독어의 schule와 같은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스콜레(σχολή, schole)’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추구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자유로운 시간’을 뜻한다. 학교는 원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마음껏 즐기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학교는 ‘돈 버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되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가능케 하는 핵심기술을 가능한 한 빠른 기간에,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곳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교육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청소년(adolescent 혹은 Jugend)’이라는 단어가 창조되었다. ‘아동’과 ‘성인’의 중간단계를 지칭하기 위해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청소년’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존재였다. ‘비행 청소년’ 아니면 ‘청소년 범죄’로 연관 검색어가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교육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근대 학교의 당위성이 만들어졌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서의 ‘스콜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국어로도 학교는 뭔가 이상하다.

‘학교(學校)’는 ‘배우는 곳’이다. 배우는 학생이 주인이 된다. 그런데 ‘가르칠 교(敎)’를 쓰는 ‘교실(敎室)’의 주인은 선생이 된다. ‘학교’와 ‘교실’이 서로 모순관계라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학교’가 되려면 학생과 선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담보되어야 한다. 주체적 학습의도를 가진 학생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지려면 선생도 일방적 계몽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생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공부하며 학생들의 관심과 교차점을 찾아야 진정한 의미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특히 목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예술의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21세기 교육은 ‘니고시에이션(negotiation)’즉 ‘협상’이 되어야 한다. 선생과 학생의 주체적 관심들이 협상하며 조화를 이뤄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 스스로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집요한 학습이 전제되어야 선생과 학생 사이의 협상이 가능해진다. 그래야만 학습은 ‘재미’있다. 의무에 기반한 일방적 계몽에서 ‘재미’는 불가능하다.

‘배우는 학교, 가르치는 교실’은 모순

100년 전, 바우하우스의 파울 클레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예술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교육에 관한 한 그는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다. 자신에게 흥미로운 것만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클레는 바우하우스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정치적 갈등에는 애써 무관심했다. 물론 그는 당시 유럽 곳곳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혁명을 지지하며, 독일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훗날 나치 탄압의 빌미가 된다. 그러나 바우하우스 예술교육에 참여한 이상, 자신의 예술세계를 철저하게 구체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1 클레의 자화상 ‘몰입’(1919). 부처의 이미지에 상당히 근접해있다.

1 클레의 자화상 ‘몰입’(1919). 부처의 이미지에 상당히 근접해있다.

클레는 설립 초기부터 계속된 바우하우스의 재정 문제와도 거리를 두었다.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가능한 한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그로피우스의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로피우스가 재정적 궁핍을 벗어나기 위해 제안한 선생들의 자발적 급료 삭감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일관되게 몰두하는 그를 가리켜 ‘바우하우스의 부처(Bauhaus-Buddha)’라고 불렀다. 클레가 1919년 그린 자화상 ‘몰입(Versunkenheit)’ 또한 부처의 이미지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 입은 굳게 닫혀있고, 눈은 감았다. 귀는 아예 없다<사진 1>. 세속의 일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겠다는 선언이다.

클레가 몰두했던 궁극의 세계는 ‘움직임(Bewegung)’과 ‘리듬(Rhythmus)’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시간예술로서의 ‘음악’을 클레는 ‘색채’를 통해 회화로 구현하려 했다. 이른바 ‘색의 움직임(Bewegung der Farben)’이다.

방법론적 원형은 바흐의 폴리포니였다. 클레의 수업노트에는 바흐의 폴리포니에 근거한 ‘색의 움직임’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담겨있다. 클레가 1930년 완성한 ‘폴리포니에 담겨진 흰색(Polyphon gefasstes Weiss)’은 이 같은 노력의 완성본이라 할 수 있다.

클레는 먼저 8개의 선을 한 번, 또는 두 번을 꺾어 화면을 분할한다. 이때 각 선은 서로 맞물리며 사각형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가운데의 흰색 사각형을 중심으로 파란색, 연한 붉은색, 오렌지색을 안쪽으로부터 칠해나간다. 이때 3가지 색은 3성부의 폴리포니를 표현한다. 색이 한 번 칠해지는 안쪽의 사각형은 밝은색이, 색이 서로 겹치는 바깥 부분은 자연스럽게 어두운색이 된다. 그 결과 마치 색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돌아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클레의 노트를 보면 이 같은 ‘색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매우 정교한, 수학적이며 논리적인 계산을 반복해서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클레가 추구했던 건 ‘색의 움직임’

2 클레의 ‘에로스’(1923).

2 클레의 ‘에로스’(1923).

클레의 1923년작 ‘에로스(Eros)’는 ‘색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시도된 또 다른 예다<사진 2>. 그림에서 피라미드 모양의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겹쳐진다. 그 겹쳐지는 면들을 붉은색과 노란색 계열의 색들로 채웠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두 개의 화살표를 동원했다. 그러나 1930년작 ‘폴리포니에 담겨진 흰색’에 비하면 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  색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화살표는 억지스럽다. ‘에로스’라는 제목도 오버다.

3 클레가 1930년 완성한 ‘폴리포니에 담겨진 흰색’은 ‘색의 움직임’을 추구한 예술세계의 완성본이다.

3 클레가 1930년 완성한 ‘폴리포니에 담겨진 흰색’은 ‘색의 움직임’을 추구한 예술세계의 완성본이다.

수업시간이 되면 클레는 자신의 작품들을 들고 들어가 그 배경에 깔려 있는 원리들을 설명했다. 1923년 작품과 1930년 작품 사이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러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 학생들은 선생의 변화와 자기혁신을 보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갔다.

클레는 유리공방·인쇄공방·직물공방의 형태마이스터를 돌아가며 맡았다. 어느 공방이든 ‘색의 움직임’에 관한 그의 교육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었다. 클레의 영향을 자신의 작품에 가장 많이 담아낸 제자는 직물공방의 군타 스퇼츨(Gunta Stölzl)과 유리공방의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다. 이들은 바우하우스 학생으로 출발해 단시간에 마이스터 지위에 올랐다(이 두 사람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다).

4 클레의 제자 요제프 알베르스의 작품 ‘푸가’(1925). [사진 윤광준]

4 클레의 제자 요제프 알베르스의 작품 ‘푸가’(1925). [사진 윤광준]

<사진 4>는 알베르스가 ‘젊은 마이스터(Jungmeister)’라는 특별한 명칭의 마이스터 지위를 얻고 바우하우스의 기대주가 되었던 1925년에 제작한 ‘푸가(Fuge)’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스승 클레의 ‘색의 움직임’에 관한 작품들처럼 푸가라는 음악형식을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다. 그러나 ‘색의 움직임’이 아주 단순하다. 이후 알베르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스승 클레의 ‘색의 움직임’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이어갔다. 라이프치히 그라시박물관(Grassimuseum)에 있는 7m 높이의 창문들이 바로 그 흔적이다. 알베르스가 1927년 제작한 것이다. 이른바

5 라이프치히 그라시박물관의 ‘요제프 알베르스 창문’ [사진 윤광준]

5 라이프치히 그라시박물관의 ‘요제프 알베르스 창문’ [사진 윤광준]

‘요제프 알베르스 창문(Josef-Albers-Fenster)’이다. 원작은 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되었고, 2011년 원작과 똑같이 재건되었다<사진 5>.

이렇게 학생들은 선생의 변화를 보며 배운다. 변화 없는 선생과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베를린 자유대에서 문화심리학으로 디플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베를린 자유대 전임강사, 명지대 교수를 역임했다. 2012년 교수를 사임하고 일본 교토 사가예술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귀국 후 여수에 살며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작은 배를 타고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저서로 『에디톨로지』『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남자의 물건』 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