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비·수출 동반 부진…샌드위치 한국 경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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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호 30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경제의 근간인 소비가 흔들린다. 국내와 해외 소비(수출)가 함께 얼어붙었다. 국내 소비 위축은 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택시·가스 등 공공요금이 뛰었는데도 전체 물가상승률은 0%였다. 공업제품 가격이 0.3% 하락하며 물가를 끌어내렸다. “소비 수요가 부진해 물건값이 내렸다”는 것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책연구원인 KDI도 최근 물가가 오르지 않는 원인을 소비에서 찾았다.

수요 위축에 얼어붙은 소비자물가 #재정 적자가 금리 인하 효과 없애 #예산 낭비 요소 철저히 솎아내야

일각에서는 경제가 쪼그라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소리까지 나온다. 물가가 지난 8월부터 3개월 연속 제자리걸음 아니면 마이너스여서다. 상승률이 1%를 밑도는 저물가 현상이 벌써 10개월째다. 메르스 때문에 소비와 나들이가 꽁꽁 얼어붙었던 2015년과 맞먹는 기록이다. 이대로 가면 자칫 소비 부진→재고 증가→생산·투자 위축→일자리·소득 감소→소비 부진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미 불길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공실률이 18% 넘게 치솟았다. 불과 2년 전엔 빈 점포가 아예 없었던 곳인데도 그렇다. 제조업 재고는 2년 넘게 증가 일로이고, 설비투자는 11개월째 내리막이다. 여기에 수출마저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0월 수출은 전년 대비 14.7% 줄어 11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내 소비와 수출이 흔들리며 한국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처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일단 무역 전쟁 같은 외생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 수출은 당장 손을 쓰기 어렵다. 시급한 건 국내 소비 되살리기다. 한국은행이 이미 나서기는 했다.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다. 돈이 돌게 함으로써 소비와 투자를 살리려는 조치다. 그러나 약발이 듣지 않았다.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거꾸로 시중 대출금리는 오르고 있다. 지난달 16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2주일 새 KB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0.15%포인트 상승했다. 자칫 한은이 노린 것과는 반대로 소비와 기업 투자가 더 위축될 판이다.

문제를 일으킨 건 대규모 재정적자다.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로 인해 내년에 발행할 국채만 130조원어치에 이른다. 60조원 신규 적자 국채에다가 만기 연장분 등을 더한 금액이다. 지난 8월 정부가 이런 수치를 발표한 직후부터 계속 금리가 올랐다. ‘채권이 대규모로 풀리면 금리가 오른다’는 시장의 법칙이 작동했다. 이 때문에 한은의 금리 인하는 전혀 효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대규모 확장 재정 정책이 통화 정책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가라앉은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재정·통화 정책이 시너지를 내야 할 판에, 되레 효과를 갉아먹는 역(逆) 시너지를 내 버렸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재정을 철저히 다시 점검해 적자 국채 발행을 줄여야 한다. 가라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나라 곳간을 푸는 건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늘린 예산은 철저히 단기 경기 부양과 장기 성장 잠재력 확충에만 한정해 써야 한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은 낭비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예비 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해가며 각 지역에 나눠 준 선심성 SOC 예산이 한 예다. 그뿐 아니다. 국정원 예산을 갑자기 30%(1610억원)나 늘리겠다고 했고, 불편해 쓰지 않는 제로페이를 지원하겠다며 122억원을 편성했다. 일자리안정자금 또한 1000억원가량 부풀렸다.

이런 선심·낭비 요소를 철저히 솎아내야 한다. 아니면 경기를 살리는 효과는 내지 못한 채, 추가로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확장할 여력만 낭비하게 된다. 경제가 중병에 걸린 마당에 의사 역할을 해야 할 통화·재정 여력마저 병에 걸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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