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天見久遠<천견구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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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호 31면

한자세상 11/2

한자세상 11/2

“사람은 현재를 보고 하늘은 미래를 본다(人見目前 天見久遠).” 명(明)나라 작가 풍몽룡(馮夢龍)의 소설 ‘지옥을 떠들썩하게 한 사마모의 단죄(鬧陰司司馬貌斷獄)’ 속 한 구절이다. ‘세상을 깨우치는 밝은 말’이란 『유세명언(喩世明言)』에 실렸다. 지난 2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이 구절을 인용했다. 윌슨 센터에서의 제2차 대중국 정책 연설에서다. 1년 전 허드슨연구소에서도 같은 구절을 인용했다. 왜 이 구절이었을까? 소설을 찾아 맥락을 살폈다.

동한(東漢) 말기에 사마모(司馬貌)란 선비가 있었다. 글재주는 뛰어났지만, 관운이 없었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염라왕의 판결 탓으로 돌렸다. 하늘에 청해 염라를 만났다. 염라가 “사람은 현재를, 하늘은 미래를 본다”고 훈계했다. 사마모는 “당신의 판결은 공평했냐”며 맞섰다.

이에 충신을 살해한 이를 단죄하는 법정이 열렸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과 부인 여후(呂后)가 피고석에, 억울하게 죽은 개국공신 한신(韓信)이 원고석에 섰다. 사마모는 “한신, 당신은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했고, 한을 대신해 천하의 절반을 얻었음에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당신을 다음 생에 성을 조(曹), 이름을 조(操), 자를 맹덕으로 한다. 한나라의 승상이 되고 위나라 왕이 될 것이다. 한나라 산하의 절반을 누려 전생의 원수를 갚게 해 주겠다. 대신 황제를 칭하지 않도록 해 한을 배반할 마음이 없었음을 밝히겠다”고 판결했다.

이어 유방을 불렀다. “당신은 다음 생에 한 헌제(獻帝)로 삼겠다. 평생 조조에게 모욕을 당할 것이다. 전생에 임금으로 신하를 배반한 까닭에 다음 생에는 신하에게 모욕을 당할 것이다.” 여후가 판결대에 섰다. “당신은 헌제의 황후가 될 것이다. 조조에게 온갖 굴욕을 당하다 끝내 궁중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는 장락궁(長樂宮)에서 한신을 죽인 원한에 대한 복수다.”

옥황상제가 사마모의 판결을 칭찬하며 “다음 생에 사마 씨 집안에 태어나 이름은 의(懿), 자는 중달(仲達)로 삼겠다. 자손이 삼국을 통일하고 국호를 진(晉)으로 삼을 것”이라며 답례했다.

“천견구원”을 인용한 펜스 부통령은 지옥의 염라왕을 자처해 중국을 심판하겠다는 것일까. 중국은 심판을 당한 유방일까, 판결을 바로잡는 사마모가 될까. 미·중 경합이 시공을 넘나드는 요즘이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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