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경력자 안뽑는 기간제 근로자 공채, 대법은 왜 '꼼수'가 아니라고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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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박람회 찾은 청년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뉴스1]

채용박람회 찾은 청년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뉴스1]

기존 기간제 근로자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공개 채용으로 전혀 새로운 지원자를 뽑는 공공 기관의 채용 행태를 '기간제법을 피하는 꼼수'로 볼 수 있을까. 부산광역시 산하 한 기관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던 A씨가 계약 기간이 끝나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자 이번에는 부산시가 이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이 상반된 결론을 낸 끝에 대법원은 “A씨를 무기계약직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A씨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A씨는 2012년 부산시 산하 한 기관에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기간제 근로자로 공개 채용됐다. 9월부터 11월까지 두 달을 기간제 근로자로 일한 뒤로는 공개채용 절차 없이 5차례에 걸쳐 다시 근로 계약을 맺었다. A씨와 부산시는 한 달 또는 두 달짜리 단기 계약을 5번에 나눠서 했고 A씨는재입사할 때마다 똑같은 일을 했다.

2013년 12월, 부산시는 다시 A씨 자리에 공개채용을 했다. A씨는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공채에서 합격한 기간제 근로자B씨는 2014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간 일하기로 계약했지만, 그해 6월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부산시는 그간 기간제 경력자 중 대체자를 찾았고 A씨가 다시 일하게 됐다. 5개월가량 쉬던 A씨는 2014년 6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일하고 계약이 끝났다. 이때부터 A씨와 부산시의 ‘부당해고’ 싸움이 시작됐다.

부산시는 "A씨는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한 총 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않아 기간제 근로자법에 따른 무기계약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간제 근로자법 제4조 제1항은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고, 기간제 근로계약이 반복적으로 갱신된 경우에도 그 계속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정한다. 기간제법은 이런 사유가 없는데도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한 경우 그 근로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무기계약 근로자)’로 본다.

1심, "A씨 공백기는 근로기간 아냐"

1심 재판부는 부산시 손을 들어줬다. 쟁점은 기간제 근로자의 ‘계속 근로한 총기간’을 따질 때 일부 공백 기간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였다. 기존 판례는 ▶공백기가 전체 근로 계약 기간에 비해 길지 않고 ▶계절이나 방학 등 업무 성격에 따른 공백일 때 ▶대기기간ㆍ재충전을 위한 휴식 등의 사정이 있을 때 공백기가 있었어도 근로관계 계속성이 유지된다고 봐왔다.

1심은 A씨가 공채에 탈락한 뒤 B씨의 대체자로 재입사하기까지의 기간은 '공백기'라고 판결했다. 처음 A씨가 일을 하게 된 2012년 9월부터 마지막 계약이 종료된 2015년 4월까지 기간은 25개월이다. 공채 탈락 후 A씨의 공백기는 5개월 18일이었다. 재판부는 이 공백기가 총 근로기간에 비해 짧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1심은 "B씨가 사직해 A씨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오로지 B씨의 개인 사정 때문이고, 부산시가 기간제법의 취지를 회피하려고 탈법하게 B씨를 채용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 "기간제 근로자 공채, 법 취지 회피 의도"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A씨의 공백기로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항소심은 A씨가 탈락했던 공개채용 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던 근로자 60명이 공채에 응시했는데 3명만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반면 일반 응시자 370명 중 94명이 서류전형에 붙었다. 항소심은 "공채의 목적이 업무적합도가 뛰어난 인원을 뽑으려는 게 아니라 근로 기간이 2년이 다 돼가는 기존 기간제 근로자와 계약관계를 종료하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부산시는 A씨뿐만 아니라 다른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서도 공개 채용 절차로 이들을 탈락시켜 근로 계약을 종료했다가 퇴사 등으로 인력 수요가 발생하게 되면 공채 없이 다시 채용하는 방식을 사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기간제법의 취지를 빠져나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판결했다.

대법, "공채로 새 사람 뽑는 것은 복지정책적 의도"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항소심의 판단이 틀렸다고 봤다. 대법원은 1심 판결과 비슷한 이유로 A씨의 공백기를 계속된 근로기간에 포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이 지적한 공개채용 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대법원은 "공채에서 기존 경력자를 우대하지 않고 신규 지원자를 채용한 것은 저소득층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결을 했다. 고정된 인건비 예산으로 복지정책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는 취지다. 이어 “우연히 인력 수요가 발생했을 때 공채 없이 기간제 근로자를 다시 채용했다고 해서 기간제법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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