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이공계 대학원생 설문조사
‘1년 중 절반은 한국에 없음. 학생지도 및 연구 안 함.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음. 이미 많은 사람이 떠났음.’ ‘밤낮 구분 없이 심부름 전화 받고 싶으신 분, 논문지도 및 세미나 중 욕설 듣고 싶으신 분, 쉬는 날에 출근했는지 감시당하고 싶으신 분, 연구비가 어디론가 줄줄 새는 거 직접 경험하고 싶으신 분은…. 이만 줄입니다.’
이공계 대학원 평가 사이트인 ‘김박사넷’에 올라온 교수와 연구실에 대한 ‘한 줄 평가’내용 중 일부다. 교수와 연구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지만, 신랄한 악평 또한 적지 않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 연구실의 현실은 실제로 어느 정도에 와 있을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30일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 133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등록금 면제와 장학금 혜택 등 경제적 부문에 대한 지원은 상당 부분 만족스럽지만, 연구 인프라와 환경 등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적지 않았다.
대학 연구실과 사회의 근무 여건은 하늘 땅 차이
특히 응답자의 62%가 “주중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연구실에 머무른다”고 대답했으며, 휴일 출근이 강제되는 경우도 15%, 공식적인 휴가가 없는 경우도 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ㆍ박사 학생들이 있는 대학 연구실과 일반 직장의 여건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주 52시간제가 법적으로 강제되고 있는 캠퍼스 바깥 사회 분위기와는 하늘 땅 차이인 셈이다.
이처럼 열악한 연구 환경 때문일까. ‘대학원 입학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현재의 학과ㆍ대학ㆍ연구실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전체의 37%에 불과했다. 현재의 국내 대학 연구실 대신 유학(20%)을 떠나거나, 차라리 취업(20%)을 하겠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논문지도와 경제적 지원은 비교적 고른 편
하지만 지도교수의 논문ㆍ연구 지도에 대한 응답은 대체로 만족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의 지도를 ‘주 1회 이상’ 받는다는 응답자가 64%로 나타났으며, ‘월 1~2회 정도’라는 응답은 26%였다. 하지만 응답자의 10%는 지도교수의 논문ㆍ연구지도가‘거의 없다’고 응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조교활동, 연구과제 수행 등을 통해 월 평균 ‘100만~ 125만원’을 지원받는다고 응답한 경우(18%)가 가장 많았으나, 응답자의 분포가 월평균 ‘25만원 미만’(3%)부터 ‘300만원 이상’(1%)까지 매우 넓은 것으로 조사돼, 학교별ㆍ학생별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전국 대학들이 비교적 큰 차이가 없는 편이지만, 근무 인프라와 환경은 탑 스쿨과 지방 대학의 차이가 큰 편”이라며 “이공계 대학원생은 우리의 미래 과학기술 역량을 좌우할 핵심축이므로, 뛰어난 연구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잘 갖추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