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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혁명’ 패시브 펀드, 공격적 매도자로 돌변할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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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호 12면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트레이더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트레이더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실물경제의 내년 침체는 더 이상 비관론자의 예언이 아니다. 한국은행(BOK) 등 주요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1980년 이후 일반화한 ‘선제적 대응(leaning against the wind)’이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은 어떨까. 혹시 2008년 리먼사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미국의 유명한 투자자문사인 리얼인베스트먼트어드바이스(RIA)의 최고투자전략가인 랜스 로버츠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근 ‘패시브 투자혁명의 신화’란 보고서를 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패시브 신화 10년’ 분석한 로버츠 #인덱스펀드·ETF 등 중수익 추구 #금융위기 후 QE·저금리로 대중화 #미, 패시브 펀드 자산 액티브 추월 #투자 수익률 떨어지면 ‘모멘텀 매도’ #주가 급락 더 악화시킬 가능성 커 #월가 사람들, 패시브 투자 위험 경고

우선 패시브 투자혁명이란 무슨 뜻인가.
“패시브 펀드는 지수만큼, 달리 말하면 시장의 평균 수익률만큼 돈을 벌겠다는 각종 투자수단을 말한다. 인덱스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이다. 펀드매니저가 적극적(active)으로 종목을 고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수동적(passive)라고 한다.”
왜 혁명이란 말이 붙었을까.
"금융투자의 발상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아서다. 패시브 이전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익’이란 꿈을 좇았다. 그런데 패시브 투자이론가들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수익은 위험과 비용을 따져보면 높은 게 아니다’며 ‘차라리 평균 수익을 추구하되 펀드 수수료, 증권 매매비용 등을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투자자의 시선을 고수익 대신 저비용으로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패시브 혁명이 언제부터 시작됐는가.
"1950년대 포트폴리오 투자이론이 제기됐다. ‘좋은 종목보다 분산투자하는 게 더 좋다’는 이론이다. 또 70년대 후반 인덱스 투자이론이 제시됐다. 증시의 모든 종목을 사는 게 저비용·저위험·합리적 투자라는 논리다. 그런데 패시브 투자이론은 80년대 중반까지 월가 사람들에 의해 무시됐다.”
왜 그랬을까.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 등처럼 좋은 종목을 골라 평균 이상 수익을 노리는 게 그 시절엔 대세였다. 하지만 증권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상황이 돌변했다. 공격적인 펀드매니저들 사이 수익률 차이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투자자들이 투자비용(각종 수수료)에 민감해졌다. 공격적인 뮤추얼펀드 대신 인덱스펀드 등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패시브 투자가 대세가 된 시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랜스 로버츠

랜스 로버츠

로버츠 등 패시브 펀드 전문가들은 ETF 등 다양한 패시브 투자장치가 금융위기 이후 대중화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양적 완화(QE)와 저금리 정책 때문에 불어난 돈이 패시브 펀드로 몰려들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마저 자산운용에 활용되고 있다.
"여기 월가에서는 로보(Robo)라고 부르는 투자기법이다. 인간의 판단 능력에 버금가는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로봇이 주식과 채권 등을 사고판다. 시장의 흐름이 패시브 이론에 따라 재편된 듯하다.”
시장의 고유 기능인 옥석구분(가치평가와 가격산정)이 무의미해진 듯하다.
"가치평가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종목별 가치를 평가해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가 많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요즘 시장에서는 개별 종목이나 자산의 가치평가는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하다. 대신 경기침체, 무역전쟁, 통화정책 등 큰 이슈에 더욱 민감해진 것은 사실이다.”
요즘 패시브 붐이 어느 정도인가.
"최근 20년 사이에 우리는 두 번의 버블을 경험했다. 1990년대 말 닷컴거품과 2006년 부동산과 신흥시장 붐이다. 투자원금 10만 달러의 가치가 출렁거리는 것을 기준으로 자산시장 흐름을 보면, 2015년 이후 자산시장은 닷컴거품 이상으로 호황이다. 난 ‘로보/패시브 붐’이라고 부른다(그래픽 참조). 최근 미국에서는 패시브 펀드에 밀려드는 돈이 액티브보다 많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패시브 펀드로 자금 유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자금유입이 늘면 주가에 긍정적일 듯하다.
"패시브 펀드가 자산가격 상승을 부채질한다고 했다. 상황이 정반대가 돼 자산가격이 떨어지는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봤는가? 주가가 떨어지면, 아주 수동적으로 지수흐름을 따라가는 펀드가 한 순간에 ‘공격적인 패닉 매도자(active panic seller)’로 돌변할 수 있다.”
무엇이 주가 급락을 일으킬까. 패시브 펀드가 주가 급락의 방아쇠가 될까.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2주 전까지 리먼이 내놓은 회사채는 우량 등급이었다. 누구도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패시브 펀드는 주가 급락의 방아쇠라기보다는 급락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주가

미국 주가

로버츠만이 패시브 붐의 위험성을 경고한 게 아니다. 2008년 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버리와 월가의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군드라흐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 등도 패시브 투자가 광적인 단계(mania)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왜 패시브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질까.
"패시브 투자는 아주 낭만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주식시장의 초장기 평균 수익률이 연 7% 남짓이기 때문에 지수 흐름을 좇는 펀드에 투자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상황이 돌변해 패시브 투자자들이 보기에 수익 7%를 기대할 수 없으면 아주 공격적으로 매도자로 돌변한다. 월가 사람들이 말하는 모멘텀 매도(momentum selling)이다.”
무슨 뜻인가.
"패시브 투자가 일반화하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편입된 종목의 주가 흐름이 동조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개별 기업의 경영과 실적 상황이 제각각인데도 주가 흐름이 동조화한다는 얘기다. 이런 때 몇몇 종목이 무역전쟁 등으로 실적이 시장 예상보다 나쁜 것으로 드러나면, 다른 대형 종목까지 마구 추락할 수 있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때 펀드 자동매도로 패닉에 빠져

“블랙먼데이를 기억하라!”

랜스 로버츠 최고투자전략가는 패시브 펀드가 시장 급락 순간 어떻게 돌변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사례로 1987년 10월 19일(월요일) 주가폭락을 들었다. 그는 “그때 주가가 순식간에 20% 이상 폭락했다”며 “나중에 밝혀진 하락원인에 비춰 주가가 지나치게 폭락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랜스는  터무니없는 주가폭락 배후에 ‘포트폴리오보험전략(Portfolio Insurance)’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보험의 핵심은 주가가 미리 설정한 범위를 넘어 하락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현물과 선물을 매도하도록 한 것이었다. 당시 펀드들이 설정한 자동매도 기준은 10% 하락이었다. 로버츠는 “개별 펀드매니저 처지에서 보면 포트폴리오보험은 아주 합리적인 안전장치였다”며 “하지만 아주 많은 펀드매니저들이 자동매도 전략에 따라 한꺼번에 수백억에서 수천억 달러어치 주식을 처분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랜스가 말한 일이 1987년 10월 19일 아침에 발생했다. 뉴욕과 도쿄, 런던 등의 주가는 직전 주의 목요일과 금요일 눈에 띄게 하락했다. 프로그램 매도가 작동할 수준에 이르렀다. 그 바람에 블랙먼데이 아침이 밝자, 뉴욕 증시엔 엄청난 매도 주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로버츠는 “포트폴리오보험의 전제는 프로그램 매도가 이뤄지면 누군가는 사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불행하게도 블랙먼데이 당일에 매수자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너무나 많은 기관 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보험 전략을 채택하고 있어서였다.

운명의 19일 장이 열렸다. 뉴욕의 현물 주가가 곤두박질했다. 덩달아 시카고 선물가격도 추락했다. 그 바람에 매도에 나서지 않던 투자자마저 매도에 나섰다. 시장이 공격적인 매도패닉에 빠졌다. 로버츠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투자전략인 포트폴리오보험이 순식간에 시장을 침몰시키는 괴물로 돌변했다”며 “좋은 투자 기법이나 장치가 지나치게 유행하면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랜스 로버츠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경제학, 철학, 역사를 공부했다. 25년 동안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에서 일했다. 그는 투자자문사인 RIA를 운영하면서, 투자 레터인 ‘리얼인베스트먼트어드바이저’의 편집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원시 데이터(raw data)와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 방향을 전망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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