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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끝장토론 한다더니, 계엄문건 성토로 끝난 여당 의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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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주장하는 검찰개혁 법안의 본회의 상정 가능일(29일)을 나흘 앞둔 25일 오후 국회 본청 246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린 이곳에서는 당초 민주당이 ‘1호 처리 법안’이라고 밝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처리 시기·방법을 포함한 검찰개혁 추진 방안 등에 대해 끝장토론이 예상됐지만, 정작 화두가 된 건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가 지난 21일 공익제보로 입수했다고 주장한 군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었다.

더불어민주당 70분 의원총회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참석한 의원들이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참석한 의원들이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의총에서는 자유토론에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도종환 의원이 군 계엄령 문건과 관련한 별도의 주제발표를 했다. “해당 문건을 살펴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이라는 일시 정국 혼란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친위 쿠데타 성격이 강하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이에 중진 의원을 중심으로 강한 동조 발언이 있었다. 설훈 의원은 “군의 명백한 쿠데타 시도”라며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국방위 소속 김진표 의원도 설 의원 주장에 공감했다고 한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도 이날 오전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계엄령 문건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티끌만 한 의혹만 있어도 발본색원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했고, 박광온 최고위원은 문건 작성 당시 국무총리였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연루설을 언급하며 “국정감사·청문회·특검 등 가능한 조사 방법을 다 동원해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에 맞춰져 있는 초점을 계엄령 문건 폭로로 바꿔보려는 ‘국면전환용’이란 주장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자, 민주당 원내 핵심관계자는 “그런 판단을 하고 있지 않다. 이 문제의 진위를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날 의총에선 ‘신중론’이 나왔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이 문제를 처음 폭로한 이철희 의원은 “계엄령 문건 문제는 필요한 사실 확인을 해 나가면서도 너무 앞서가지는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황 대표 연루 가능성을 앞세우는 것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 의원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당 차원에서 이 문제를 그렇게까지 끌고 가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낡은 정치 문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검찰개혁과 관련해서는 조응천 의원이 “이제는 조국을 놓아주자. 검찰개혁은 ‘듀프로세스(due process·정당한 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조 의원은 “애초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치켜세웠던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공수처설치법을 비롯한 검찰개혁을 최우선과제로 강조하면 할수록 조 전 장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하면 “검찰개혁이라는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조국은 싫다”는 일부 여론을 당겨올 수 없다는 취지다.

약 70분간 진행된 의총 말미에는 이른바 ‘조국 국면’에서 소신 발언으로 관심을 모았던 김해영·박용진 등 초선의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은 주로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전력하지 말고 민생까지 챙겨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다만, 김해영 의원은 “샴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쓰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된다”고 비유하며 당 혁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국면’ 이후의 자성·성찰을 강조하기보다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수사·종결까지 이뤄진 계엄령 문건 이슈를 강하게 제기한 의총 분위기와 관련해선 당내 우려가 나왔다. 한 초선 의원은 “도 의원이 의총에서 계엄 문건의 심각성을 발표하니까 그 주제로 확 돌아선 것 같다. 솔직히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의원은 “조국이 아니면 검찰개혁을 할 수 없고, 여기서 밀리면 레임덕(lame duck·집권 말기 지도력 공백 현상)이라는 두 가지 잘못된 주문을 2~3개월 동안 해놓고,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판단·소통 능력을 잃은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는 러시아를 방문 중인 이해찬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오는 30일 예정된 의총에서 자유토론을 이어간다.

김경희·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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