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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확대 방침은 졸속행정" 전교조도 대학도 들고 일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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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5일 정부가 서울 상위권대의 학생부종합전형 축소 유도 등 '정시 확대' 방침을 발표하자, 상당수 교육단체에서 "입시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학생 선발의 당사자인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가  이미 정시 확대란 정답을 정해놓고 '대학과 협의하겠다'고 나서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정치 확대 발언 후폭풍 #교육단체들 "대입정책 1년만에 바꿔" #대학들 "말만 협의이고 사실상 강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신입생 대다수를 학종이나 논술로 선발하는 서울의 일부 대학에 대해 해당 전형의 비중을 낮추고 정시 선발 인원을 늘리도록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상향 비중과 적용 시기는 대학들과의 협의를 거쳐 다음달 안에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단체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해 대입 공론화를 통해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정시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인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데도 1년 만에 이를 뒤집어 학생·학부모·교사·대학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동하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은 "대학별로 정시 비율이 30%가 안되는 현재도 수시에서 미충원된 인원이 정시로 넘어와 실질적으로 42%가량 정시로 뽑힌다"며 "만약 정시를 40%로 상향하면 실제론 절반 이상이 정시로 대학 가게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다른 국정과제들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경원 참교육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 정책은 고교학점제 도입, 고교 서열화 해소, 수능·내신의 절대평가"라면서 "갑작스럽게 정시를 확대해 수능의 변별력과 중요성을 높여버리면 다른 모든 교육정책과도 엇박자가 난다"고 우려했다.

교육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교조 관계자는 "현 정부가 교육을 국면 타개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정시 확대 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공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입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대입을 '공정성'이라는 미시적인 문제 해결에 맞춰 흔들어선 안 된다. 교육을 통해 '특권 대물림'을 해결하려면 별도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이 24일 오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유은혜 장관 대국민 사과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이 24일 오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유은혜 장관 대국민 사과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이 직접 '학종 비중을 낮추고 정시를 늘리라'고 지목했던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서울 소재 사립대의 입학팀장은 "이미 대학가에선 교육부가 정시 확대를 위해 재정지원사업을 연계해 대학을 흔들거란 소문이 퍼져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정시 비중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사립대의 입학처장도 "대통령이 직접 '정시 확대'를 선언한 상태라, 정시 비율을 최소한 40%는 넘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있다"며 "교육부가 대학과의 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정한다던데, 이건 말만 협의지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교육학자 상당수는 정부가 직접 대입 정시와 수시 비율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수능·내신·비교과 위주의 대입 전형을 유지하고 대학이 이를 따르는 건 자연스럽지만, 선발 비율 자체는 대학의 자율권으로 존중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공론화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한 약속이 '정시 30%'였는데, 이를 다시 바꾸려면 다시 한번 국민적 합의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정제영 교수는 "수시가 생겨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객관식 문제풀이'를 지양하고 교육과정을 다양화하자는 교육적 공감대와 방향성이 지속해 왔는데, 현 정부가 새로운 비전 제시 없이 무너뜨리고만 있다"고도 비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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