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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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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제야 언니에게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찢어버리고 싶은 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찢어지고 있다.…나는 어린 여자애여서 무시당했다가 젊은 여자여서 의심받고 늙은 여자여서 무시당하게 될 거야.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여고 시절 친척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한 제야의 이야기. 성폭행 피해자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어떤 피해자들은 ‘피해자다움’을 보이지 않는지, 세상은 어떤 ‘2차 가해’를 가하며 상처는 어떻게 극복해가는지 가히 성폭력 피해자 생존기라 할만하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뻔한 길을 가지 않는다. ‘끔찍한 오늘’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예의라고 보는 식이다. 서른여덟 젊은 작가의 작품. 목소리 높여 흥분하지 않기에 더 깊은 울림이 남는다. 한 장 한 장 아껴 읽었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