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구지만 내일은 적이다. 최태웅, 석진욱, 장병철 1976년생 동갑내기 사령탑들이 그려가는 V리그 2019-20시즌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막을 이틀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도 세 사람이 주고받은 따뜻한 덕담과 재치있는 '말 공격'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석진욱 OK저축은행 감독과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은 올 시즌 나란히 감독으로 데뷔한다. 두 사람 다 소속팀에서 코치를 지내다 지휘봉을 잡아 적응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사령탑에 올라 V리그 정상까지 오른 최태웅 감독까지 세 사람은 인하부중-인하부고를 함께 다녔다. 석 감독과 최 감독은 한양대, 장 감독이 성균관대로 진학해 잠시 갈라졌지만 삼성화재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달 컵대회를 앞두고는 2년 선배 신진식 감독이 이끄는 삼성화재까지 부산에서 함께 '써머 매치'를 할 만큼 친한 사이기도 하다. 12일 개막하는 정규시즌은 세 사람이 처음으로 지도력을 겨루는 무대다.
'친구가 이끄는 팀에게 몇 승을 거두고 싶으냐'고 질문에 세 사람은 불꽃튀는 경쟁심을 드러냈다. 석진욱 감독은 "친구는 친구고. 최선을 다해 다 이기겠다"며 6전 6승을 예고했다. 장병철 감독은 "나도 지고 싶지 않다. 전부 이기면 좋겠지만 최소한 4승 2패는 하고 싶다"고 했다. 최태웅 감독은 "석진욱 감독이 꼭 물귀신 같다"며 '우리한테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좀 봐달라'는 장난기있게 받았다. 최 감독은 '후배 감독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에 "아마 잠이 안 올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겠지만, 소신을 가지고 버텼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로에 대한 여과 없는 '디스전'도 벌어졌다. 석진욱 감독은 "최 감독은 어린 시절에 재미가 없다. 욕도 별로 안 하는데 배구 얘기를 할 때만 흥분한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우리보다 (감독을)먼저 시작하고 잘 이끌었다. 좋은 부분은 배우고 싶다. 다만 (명언은)따라하고 싶지 않다. 조금만 자제하면 최고의 감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웅 감독은 "은퇴 당시 석 감독이 'OK저축은행으로 오면 어떠냐'면서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 '밑으로'가 아니었으면 갔을 것"이라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두 친구의 설전을 흐뭇하게 바라본 장병철 감독은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은 경쟁 상대다. 그러나 경쟁 속에서 세 친구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우리 우정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따뜻한 마무리를 지었다. 세 사람의 대결은 이 달 말에야 벌어진다. 29일 현대캐피탈-한국전력(천안) 경기가 첫 번째다. 11월 2일엔 한국전력-OK저축은행(수원), 5일엔 OK저축은행-현대캐피탈(안산)의 경기가 이어진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