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지시에 끓는 검찰…"조국 검찰개혁안 잘못 자인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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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자체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한 가운데 검찰 내부에선 반발 분위기가 감지된다. 법조계에선 문 대통령의 지시를 두고 현 정부가 국정과제 1호로 추진한 검찰개혁 방안이 잘못됐다는 점을 자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文 대통령 "검찰총장에게 지시…개혁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9기 출범식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9기 출범식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30일 오전 조국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검찰을 향해 쓴소리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들어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대폭 강화된 반면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 관행, 또 조직문화 등에 있어서는 개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모든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특히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 기관"이라며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 검찰은 물론 법무부와 대통령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부족했던 점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겐 자체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검찰 내부의 젊은 검사들, 여성 검사들, 형사부와 공판부 검사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검 반응 자제…윤석열 "이런 때일수록 묵묵히"

윤석열 검찰총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대검찰청은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이날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 발언의 취지를 분석해 조만간 검찰 자체적인 개혁 방안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검찰은 법무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사실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이 나올 때까지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의 대통령 업무 보고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윤석열 총장은 외부 노출을 삼가고 있다. 이날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에서 리더십 교육을 받는 초임 검사장들과의 저녁 자리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별관의 구내식당에서 진행키로 했다.

앞서 윤 총장은 이날 오전 대검 5급 수사관 전입 신고식에선 "이런 때일수록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 구성원들에게 여권의 잇따른 수사 외압성 공세에 위축되지 말라는 뜻을 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검찰 '부글부글'…"정부안 잘못 자인한 것"

조국 법무부장관이 30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위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평검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는 개혁위는 법무부 탈권력화, 검찰 조직문화 및 인사제도 개편 등 방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뉴스1]

조국 법무부장관이 30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위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평검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는 개혁위는 법무부 탈권력화, 검찰 조직문화 및 인사제도 개편 등 방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뉴스1]

대검이 반응을 자제하는 가운데 검찰 안팎은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 장관이 보고한 검찰의 형사부, 공판부 강화와 피의사실 공보준칙의 개정 등은 모두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한 방안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형사공판부 강화와 특수부 축소 방침은 문재인 정부 첫 검찰총장이던 문무일 전 총장이 검찰 자체 개혁 노력의 하나로 추진했던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이와 반대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을 담은 검찰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정부의 검찰개혁안을 밀어붙였던 사람이 바로 조국 장관이다.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찰개혁 수정안도 정부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검찰개혁안의 국회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하자 검찰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세운 사람들이 인제 와서 문 전 총장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며 "지금의 형사·공판부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시는 앞선 검찰개혁안이 잘못됐다는 것을 정부가 자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 등을 지적하며 자체 개혁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과도한 검찰권 남용은 사라져야 할 검찰의 대표적인 병폐"라면서도 "전 정권을 향한 이른바 '적폐수사' 당시엔 왜 여권에서 아무런 비판 목소리가 없었느냐"고 지적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직접 검찰의 팔·다리를 잘라오라고 한 것"이라며 "지난 주말 촛불 집회를 본 여권이 조 장관 관련 국면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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