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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컬러풀한 원색은 상상력 자극해"

중앙일보

입력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카림 라시드가 28일 가구 브랜드 '보컨셉' 청담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카림 라시드가 28일 가구 브랜드 '보컨셉' 청담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산업 디자이너 중 카림 라시드(Karim Rashid·59)만큼 한국인에게 친근한 이가 또 있을까.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은 차치하고서라도 ‘파리바게뜨’의 오(eau) 생수병, ‘현대카드’, ‘겐조’의 아무르 향수병 등 생활 속에서 한 번쯤 그가 디자인한 제품을 사용해본 이들이 많다. 직선보다는 곡선, 무채색보다는 핑크·오렌지 등 튀는 컬러로 구성된 그의 디자인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마냥 예쁘고 독특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기능성, 사용할수록 설득되는 실용성,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성이 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은 그래서 귀하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woo.sangjo@joongang.co.kr, 보컨셉

“매년 생일이 되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상형 문자를 몸에 새겨요.”
양 팔에 빼곡히 자리한 문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자 나온 답이다. 손가락에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각진 반지를 차고, 과장된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다. 지난 8월 28일 청담동에 위치한 덴마크 가구 브랜드 '보컨셉'에서 카림 라시드를 만났다. 30년 경력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슬슬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한데 늘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그에게 요즘 몰두하는 디자인에 관해 물었다.

물병부터 호텔까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한다

“우리 디자인 사무실에선 ‘마이크로 투 마크로(micro to macro)’라고 표현한다. 주얼리나 휴대폰부터 호텔이나 사무공간까지, 작은 스케일부터 큰 스케일까지 아우른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한 병원 실내를 디자인하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 사람을 낫게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작은 문구류부터 거대한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대중과 활발하게 만나고 있는 카림 라시드. [사진 카림 라시드 홈페이지]

작은 문구류부터 거대한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대중과 활발하게 만나고 있는 카림 라시드. [사진 카림 라시드 홈페이지]

디자인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독창성이다. 공간이든, 로고든, 패션이든 디자인에 나의 독창성이 반영되도록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창성을 지키는 것이 힘들다. 예를 들어 의자를 디자인한다면, 그동안 만들어진 수백만 개의 의자 중 독창성을 지닌 의자를 새로 만드는 것이 무척 힘들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한다. 독창성 없는 제품을 내놓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싶다.”

요즘에는 과거 아카이브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이 유행이다.  

“개인적으로 과거의 디자인을 복제하거나 비슷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의뢰 받은 디자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고, 그것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다. 디자인은 현시대의 문화적 형태다. 나의 진짜 소망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 양식에 살면서 옛것에 대한 향수, 고풍스러운 전통, 오래된 의식 등 무의미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카림 라시드는 유선형 몰딩을 이용한 부드러운 곡선, 기하학적인 패턴, 원색적인 컬러를 활용해 실용성을 강조한 제품들을 주로 디자인한다. 왼쪽부터 '파리바게뜨' 생수병, '겐조' 아무르 향수병, '새턴바스'의 커플 욕조. [사진 카림 라시드 홈페이지]

카림 라시드는 유선형 몰딩을 이용한 부드러운 곡선, 기하학적인 패턴, 원색적인 컬러를 활용해 실용성을 강조한 제품들을 주로 디자인한다. 왼쪽부터 '파리바게뜨' 생수병, '겐조' 아무르 향수병, '새턴바스'의 커플 욕조. [사진 카림 라시드 홈페이지]

현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디자인을 통해 현시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시대를 반영하려면 통찰력과 인지력이 필요하다. 지금 시대는 과거에 비해 좀 더 캐주얼하고 부드럽고 편안해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통념은 물론 기술에 따라서도 디자인은 달라진다. 발전한 기술을 반영해 빌딩 인테리어에 솔라 글라스(solar glass)를 사용하고, 작은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진화한 플라스틱인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한다. 태양광을 차단하는 솔라 글라스는 에너지 효율을 좋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지속가능한 소재다.”

디자인에 있어 지속 가능성이란 뭘까. 소재의 문제일까.  

“물론 재료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나는 요즘 디자인을 의뢰하는 회사에 100% 분해 가능한 친환경 플라스틱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시간이 흘러도 대체 불가능한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미 세상엔 너무 많은 제품이 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제품 여러 개보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지속가능한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보컨셉의 '오타와' 소파. 상황에 따라 모양과 용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듈 구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곡선 라인이 돋보인다. [사진 보컨셉]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보컨셉의 '오타와' 소파. 상황에 따라 모양과 용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듈 구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곡선 라인이 돋보인다. [사진 보컨셉]

대체가능 하다는 것은 기능이 다양하다는 것인가. 모듈형 가구처럼.
“좋은 디자인 제품은 기존 3~4개의 물건을 대체할 수 있다. 모듈화도 좋은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컨셉과 작업한 '오타와' 소파의 경우 3가지 방향으로 앉을 수 있고, 10개의 모듈을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무한대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재구성할 때마다 달라 보이는 게 마치 자연 풍경이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물 흐르듯 변화하는 것과 같다. 모듈형 디자인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모양과 용도를 변화시켜 필요한 가구의 개수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미래적이다.”

카림 라시드는 "우리의 눈은 1만 가지가 넘는 색을 인식할 수 있다. 그만큼 컬러풀한 세상을 만들어 많은 색을 경험하는 것이 좋지 않냐"며 원색을 선호하는 이유를 밝혔다. 우상조 기자

카림 라시드는 "우리의 눈은 1만 가지가 넘는 색을 인식할 수 있다. 그만큼 컬러풀한 세상을 만들어 많은 색을 경험하는 것이 좋지 않냐"며 원색을 선호하는 이유를 밝혔다. 우상조 기자

직선보다는 곡선을, 핑크·연두색 등 높은 채도의 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면 좋겠다. 요즘 세계는 점점 작은 도시처럼 변하고 있다. 어떤 곳에 여행을 가도 모두 비슷한 생활양식으로 살아간다. 문화가 융합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새롭고 다른 것에서 느끼는 ‘영감’은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결국 디자인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행복을 주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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