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1년 손학규, 사퇴 거부하며 꺼내든 北전설 '마십굴'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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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전설인 ‘마십굴’로 말문을 열었다. 기존에 내걸었던 '조건부 사퇴' 약속까지 번복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과정에서였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려고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려고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마십굴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옛날 황해도에서 아내와 살던 나무꾼 마십이 어느 날 산에 쓰러져 있는 청년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원님의 아들이었다. 청년은 은혜를 갚긴커녕 마십의 아내를 납치한 뒤, ‘100일 동안 벼랑 끝에 있는 바위에 50리 굴을 뚫으면 아내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마십은 100일의 노력 끝에 바위굴을 뚫었고, 아내를 되찾았다.

손 대표는 이날 자신을 마십에 빗댔다. “제게 지난 1년은 커다란 벼랑을 마주한 마십 같은 상황이었다. 거대 기득권 양당 체제 속에서 제3당의 길은 50리 바위굴을 뚫는 무모한 일이었는데, 당은 내분으로 거대한 벼랑을 한 치도 뚫고 나갈 수 없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제3의 길, 새로운 정치를 위해 저는 제 속을 비운 지 오래다. 마십의 마지막 망치질이 불가능해 보였던 50리 바위굴을 뚫었듯 저의 마지막 인내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이 의결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을 거론하며 “이미 그 길은 시작됐다. 아직 험한 길이 남아있지만, 다당제 연합정치가 열리고,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 개혁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당 내홍과 관련,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에게 “함께 가자”고 재차 촉구했다. 손 대표는 “우리의 작은 망치질이 한순간에 50리 굴을 뚫고 새로운 정치 역사를 쓸 것”이라며 “우리에게 지어진 역사적 소명을 함께 짊어지고 나가자”고 말했다.

손 대표는 지난해 9월 2일 바른미래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시 취임 일성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이었다. 노인 우공이 산을 손으로 직접 옮겼다는 중국 사자성어다. 당시 손 대표는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내 제왕적 대통령제와 갑질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저를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1년 동안 진전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며 열흘간 단식을 하면서 여야 5당의 선거제 개편 합의를 끌어냈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며 준연동형으로 변형됐지만,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정개특위 문턱을 넘어서면서, 아직 단계(법사위)는 남아있지만 본회의까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하지만 여전히 당내가 문제다. 지난 4월 보궐선거 패배, 선거법 패스트트랙 관철 과정 등에서 바른미래당은 분당 수준까지 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궐선거 패배 이후 비당권파가 손 대표 퇴진을 주장하며 최고위원회를 보이콧해온 가운데, 비당권파인 오신환 원내대표 취임 후 지도부 회의(최고위)자체가 계속 공전 중이다. 7월에는 손 대표가 스스로 제안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하며 내홍 수습방안을 찾는 듯했지만, 혁신위 내부의 당권파·비당권파 간의 대립으로 결국 무산됐다.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공개적으로 터져내오는 '안철수‧유승민 러브콜'로 원심력도 큰 상황이다.

손 대표는 “우리가 당을 확고히 지키고 제3지대를 확대해 나가면 다음 총선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추석 전 당 지지율이 10%가 안 되면 사퇴하겠다’던 약속은 번복했다. 손 대표는 “당 내분을 수습하고자 혁신위를 출범시키면서 당 지지율이 10% 안 되면 사퇴하겠다고 말했지만, 혁신위 활동이 제대로 진행됐나. 2주 동안 오직 손학규 퇴진만 이야기했다”며 “저에게는 아직 당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사명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비당권파는 “노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하태경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손 대표는 추석까지 당 지지율 10%가 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던 약속을 번복했다. 정치 도의와 염치를 다 버렸다. 노욕이 끝이 없다”며 “긴급 당 의원총회를 소집해 손 대표의 사퇴 번복에 대한 당의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은 오는 5~6일 의원연찬회를 한다. 당의 진로와 정기국회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지만 또한번 내전으로 당이 휘청일 수도 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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