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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제 요청에도…에스퍼 “매우 실망, 여전히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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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왼쪽)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 에스퍼 장관은 이날 최근의 한·일 갈등 상황과 관련해 ’양측이 이에 관여된 데 대해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왼쪽)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 에스퍼 장관은 이날 최근의 한·일 갈등 상황과 관련해 ’양측이 이에 관여된 데 대해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종료 결정과 관련한 미국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외교부가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실망 표명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국방부·국무부가 일제히 “실망”을 표출하면서 한·미 간 공개 충돌 기류마저 보인다.

던퍼드 합참의장 “한·일관계 후퇴” #미 국무부선 22일 성명 다시 발표 #여론조사 근거로 지소미아 종료 #미국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

28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며 “서울과 도쿄의 내 상대에게도 이를 표명하고 해결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공유한 더 많은 이익과 가치에 기반해 신속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한 중요한 궤도로 복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도 “나는 이를 한·일 관계의 후퇴로 본다는 점에서 에스퍼 장관과 실망을 공유한다”며 “우리가 효율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세 나라 공통 이익이기 때문에 긍정적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수장들은 국무부와는 달리 한·일 양국에 실망을 함께 표출하고 해결을 촉구했다.

“안보협력에 미칠 영향 한국이 무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청와대에서 김조원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청와대에서 김조원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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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는 이날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해리스 대사의 면담과 관련,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비공개 외교 대화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우려와 실망’을 재차 표명하면서 지난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당일 “미국은 문 정부에 이 결정이 미국과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문 정부의 동북아의 안보적 도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반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한 성명을 다시 발표했다.

국방부의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차관보도 ‘조세영-해리스 면담’ 몇 시간 뒤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국무부 성명을 그대로 낭독했다. 그러면서 “당장 가까운 시일 내 한국이 지소미아에 재가입하고, 협정을 갱신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선 “분명히 안보 환경보다는 국내 정치를 앞세운 결정”이라며 “계속 협의해 왔지만 지소미아를 갱신하지 않겠다는 사전 경고(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도 표출했다. “그만 좀 하라”는 한국의 요청을 미국은 “수용할 생각이 없다”고 사실상 받아친 셈이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중앙일보에 “트럼프 정부 관리들은 문 정부가 지소미아 결정을 사전 통보해 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도 상당히 크다”며 “최소한 이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압박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소미아 종료 결정 후 정부의 정교하지 못한 메시지 관리도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 직후 청와대 관계자)→“미국 희망대로 결과가 안 나왔기에 실망했다는 것은 당연”(23일 미 국무부의 실망 표명 직후 청와대 관계자)→“‘실망’은 미국이 동맹국·우호국과 정책 차이가 있을 때 표명하는 대외적 표현”(28일 일본의 화이트 국가 조치 시행 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실망한다는 공개 메시지는 이제 자제해 달라”(28일 해리스 대사 면담 시 조세영 차관) 등으로 널뛰었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가 역내 안보 환경에 미칠 영향, 즉 미국이 우려하는 정확한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여전히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려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불쾌감을 표명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특히 미국은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 근거 중 하나로 여론조사를 꼽은 것을 가장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정무적으로 국민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거의 매일 여론조사를 했다”며 “국가 이익이라는 것은 명분도 중요하고 실리도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보 사안인 지소미아 결정에 반일 정서를 고려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언급이다. 슈라이버 차관보가 지소미아 종료를 ‘국내정치를 앞세운 결정’이라고 비판한 배경일 수도 있다.

조세영-해리스 면담 사실을 외교부가 보도자료로 공개한 것도 언론플레이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주한 미 대사가 업무 협의차 외교부 청사를 종종 방문하지만 공개 행사가 아니면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히 기자들과 만난 정부 소식통은 “조 차관이 해리스 대사를 ‘불렀다’”는 표현까지 쓰며 해리스 대사에게 사실상 따진 내용을 모조리 공개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에 대해 “비공개 협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비공개 협의’라는 문구에는 “한국은 왜 비공개 협의 내용을 공개했느냐”는 불만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힐 “주한 미국대사 초치? 기억 안난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는 VOA에 “솔직히 말해 어떤 미국 대사가 한국 외교부로 초치됐다는 기억이 나지 않으며 다소 이례적”이라면서도 “미국 측 공개 성명은 이런 진행 중인 사안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에 우리 입장에 대해)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한·미·일 간 안보 협력이 중요한데 역사 문제, 수출 규제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좋지 않으니 그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이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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