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치 배제’ 내건 대학가 조국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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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태호 사회2팀 기자

김태호 사회2팀 기자

지난 23일 서울대·고려대에서 재학·졸업생 약 1000여명이 모여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시비리의혹과 관련해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6시 고려대 집회 참가자들은 “정치 간섭 배격하고 진상규명에 집중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학생증을 확인하고 학생들을 광장에 들였다. 앞서 집회 준비과정에선 주최자의 특정 정당 활동 의혹이 제기되는 등의 문제가 생겨 주최자가 두 차례 바뀌었다. 결국 세 번째 주최자가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같은 날 서울대 집회 분위기도 비슷했다. 오후 8시 졸업·재학생이 중심이 돼 촛불 집회가 진행됐다. 주최 측은 “정당 관계자나 정치적 이념이 있는 사람은 퇴장해달라”는 안내방송을 수차례 냈다. 그런데도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유튜버들이 집회를 생중계하는 일이 벌어졌고, 집회에 외부 세력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날 집회를 이끌었던 홍진우씨는 이런 의혹에 대해 “학생 차원의 자발적이고, 정치적 성격이 없는 집회였다”고 해명했다.

대학이 정치세력의 촛불 집회 참여를 집요하게 막는 건 자발적으로 꾸린 촛불 집회의 의미가 퇴색될까 걱정해서다. 서울대와 고려대 재학생들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촛불 집회 논의를 시작했다. 집행부도 학생들이 스스로 꾸렸다. 이런 학생들의 힘이었을까. 각 대학 총학생회도 나서기 시작했다. 서울·고려대 총학생회는 2차 촛불 집회를 주도하기로 했다. 부산대도 28일 촛불 집회를 연다. 경북대·대구대·영남대도 학생회가 나서 촛불 집회를 논의한다.

학생들이 정치세력과 선을 긋고 집회에 나선 건 공정성에 의문이 들어서다. 후보자의 딸이 얻은 기회와 결과들이 정의롭고 정당했는지를 묻는다. 학생들의 주장은 이렇다.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아도 성적장학금 한번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유급위기를 잘 극복해 격려한다’며 후보자 딸에게 장학금이 수차례 지급됐다. 고등학교 문과 2학년생이 친구 아빠의 도움으로 의학 실험에 성실히 참여해 2주 만에 병리학 영어 논문 1저자로 이름을 올려 대입 자소서 한 줄도 채웠다. 논란에 대해 후보자는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다”며 법적 문제는 없었지만 혜택을 누린 건 청년들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겠다는 의미를 담아 사과했다.

대학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사과를 한다고 조 후보자와 딸이 얻은 혜택이 정의로웠는지 설명되진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 들은 구호 속엔 정치적 의미가 없었다. 진실규명만 원했다. 서울대 집회를 꾸렸던 홍씨도 “(이번 촛불집회가) 좌우를 나누기보다 정의와 위선을 심판하고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집회였다”며 “평상시 정치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참여 의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최근 한 유명 앵커가 페이스북에서 정치적 의미를 담아 촛불 집회에 ‘훈수’를 두다 청년들에게 비판받고 사과했다. 성급하게 진영논리를 꺼내 들고 촛불 집회에 참여한 청년들을 바라본 것이다. 검찰까지 나선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의 진실 규명은 진행형이다. 인사청문회를 진행할 정치권이나 수사를 하는 검찰 모두 대학가의 촛불집회의 요구를 진지하게 귀담아들어야 한다.

김태호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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