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진통제 남용 존슨앤존슨 7천억 '배상금 폭탄'에 제약업계 일파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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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약성진통제.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약성진통제. [로이터=연합뉴스]

하루 평균 미국인 13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문제와 관련해 제약사의 책임을 인정한 미국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와 파장이 커지고 있다. 현재 주정부 등 지방자치단체가 제약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2000여건의 오피오이드 소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클라호마 법원 "중독성 축소 홍보" #제약사 대상 2000여건 소송에 영향 #트럼프, 2017년 '오피오이드 비상사태'

미 오클라호마주 클리블랜드 카운티 지방법원의 새드 보크먼 판사는 26일(현지시간) 오피오이드 중독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약사 존슨앤존슨(J&J)에 5억7200만달러(약7000억원)의 배상금을 오클라호마 주정부에 지불하도록 판결했다. 보크먼 판사는 오피오이드 시장의 60%를 공급해온 J&J가 오피오이드의 중독성을 축소한 마케팅으로 의사와 환자를 속여 오남용 사태를 조장했다고 봤다. 그는 "오클라호마 주에 공적 불법방해(public nuisance:일반 대중에게 해를 주는 불법 행위)를 초래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현재 미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2000여건의 오피오이드 관련 소송의 첫 판결로, 향후 관련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급증하면서, 이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늘고 중독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커져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2017년 10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오피오이드 오남용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이후 많은 지방 정부들이 무분별한 오피오이드 제조 및 유통의 책임을 물어 제약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단, 첫 판례인 J&J에 대한 배상금액은 주정부가 요구한 170억달러의 30분의 1로 크게 줄었다. 오피오이드 관련 사상 최대 수준의 배상금이지만, 미 학계와 업계에서는 배상금의 규모를 두고 예상보다 적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클라호마주는 지난 3월과 5월 퍼듀사와 테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각각 2억 7000만달러와 8500만달러의 배상금에 합의한 바 있다. 이 배상금은 지역사회의 오피오이드 중독자에 대한 치료 및 관련 연구를 위한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지난 2017년 미국 워싱턴주 주정부가 마약성 진통제를 판매한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 계획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7년 미국 워싱턴주 주정부가 마약성 진통제를 판매한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 계획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2017년에만 4만7000명의 미국인이 오피오이드 오남용으로 사망했고 170만명이 중독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기간을 20년으로 넓혀보면 70만2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지금도 매일 130명이 오피오이드 오남용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미 정부는 추산한다. 미국 정부가 오피오이드 관련 1년에 지출하는 의료비만 785억달러에 달한다.

이번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오피오이드 남용 근절 정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또 이로 인해 제약사들의 무분별한 마약성 진통제 생산 및 유통에 제동 걸릴지도 주목된다. J&J는 이날 성명에서 "사실상 법률에도 근거를 두지 않는 잘못된 판결"이라며 항소할 방침을 밝혔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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