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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속도내자 갈라진다, 20년뒤 타이어 이들 손에 탄생

중앙일보

입력

한국타이어 디자이너들이 대전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에서 회의를 마친 뒤 직접 개발한 최첨단 미래 콘셈트 타이어 앞에 모였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타이어 디자이너들이 대전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에서 회의를 마친 뒤 직접 개발한 최첨단 미래 콘셈트 타이어 앞에 모였다. 프리랜서 김성태

  ‘포뮬러원 경주가 펼쳐지는 트랙. 코너를 돌던 차량이 미끄러져 방호벽에 부딪히며 불이 난다.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꿈이지만, 과거다. 사고의 기억이 한때 카레이서였던 남자를 괴롭힌다. 힘겹게 나선 출근길. 비가 내린다. 푸른 불빛의 센서가 달린 타이어가 노면 상태를 읽고 타이어 트레드(홈)의 모양을 바꾼다. 이날은 남자의 생일. 퇴근길 아내가 남자의 직장으로 찾아와 선물을 건넨다. 경주용 헬멧이다. 포뮬러원 트랙을 다시 찾은 남자는 경주용 차량에 올라탄다. 차량이 굉음을 내며 속도를 높이자 타이어가 절반으로 갈라진다. 고속 주행 시 주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한국타이어의 디자인팀이 지난해 10월 유튜브에 올린 2분 15초짜리 ‘미래 모빌리티(mobility)’동영상이다. 디자인분야 명문인 영국 왕립예술대학 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협업해 만든 작품이다. 한국타이어가 주제를 정해주면, 학생들이 프로젝트 형식으로 20여 년 뒤 미래 모빌리티를 구상해낸다. 디자인팀은 이를 바탕으로 사내 엔지니어들과 협업을 통해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미래 타이어 개념을 잡고 시제품과 동영상을 제작한다. 이렇게 나온‘콘셉트 타이어’는 주요 국제모터쇼에 전시된다.

한국타이어 디자이너들이 대전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에서 미래 타이어와 관련한 회의를 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한국타이어 디자이너들이 대전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에서 미래 타이어와 관련한 회의를 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제조업체 디자인팀은 대개 시판제품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부서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의 디자인팀은 미래도 함께 만든다. 양산업무가 디자인팀 업무의 70%이지만, 나머지는 미래 타이어를 구상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사내에 디자인팀이 만들어진 건 20년 전인 1999년. 연구소 설계팀에서 빠져나왔다. 시판 타이어 설계를 위한 디자인을 넘어서 보자는 의도였다.

미래 타이어 디자인은 2000년 대학생 대상 국내 디자인공모전을 열면서 사실상 시작됐다. 현재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는 윤성희(43) 팀장이 2000년 공모전 당시 대학 4학년생 신분으로 특별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그는 수상을 계기로 2002년 한국타이어에 입사, 지금까지 디자인팀에서 성장했다.

디자인팀은 2012년부터 미래 타이어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년에 한 번씩 외국의 유수 대학 디자인 전공 학생들과 협업을 통해 미래 상상력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첫해인 2012년에는 미국의 신시내티대학, 2014년에는 독일 포츠하임대학, 2016년엔 다시 신시내티대학과 같이했다. 타이어와 차량 등 모빌리티 뿐 아니라 사회변화에 대한 미래 트렌드를 조사하고, 구체화한 디자인에 엔지니어링을 입혀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발전시킨다. 최종 결과물은 실물 모형과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동영상이다.
2016년 만든 ‘연결된 세상과 연결하기(Connect to the Connected World)’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지금까지 100만 뷰에 가까운 조회 수를 올리는 대박을 쳤다. 댓글들도 영어ㆍ러시아어ㆍ프랑스어 등 다양해 전 세계 사람들이 고루 한국타이어 동영상을 본 것으로 파악됐다.

등산화 밑창 제조분야 선두주자인 이탈리아 비브람과 협업해 만든 타이어와 등산화. [사진 한국타이어]

등산화 밑창 제조분야 선두주자인 이탈리아 비브람과 협업해 만든 타이어와 등산화. [사진 한국타이어]

디자인팀에서 만든 콘셉트 타이어 아이디어는 브랜드전략팀과 대전 타이어연구소로 보내져, 실제 타이어에 적용하기도 하고 다른 제품과 협업 형태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2016년에는 등산화 밑창 제조분야 선두주자인 이탈리아 비브람과 협업을 통해 콘셉트 슈즈를 개발, 국제전시회에 공개하기도 했다. 콘셉트 슈즈는 타이어의 최첨단 접지력 기술로 만들어진 오프로드용 콘셉트 타이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콘셉트 타이어는 공상과학(SF)적 상상력만의 산물이 아니다. 기계공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미래 선행기술 차원에서 국내외에 특허등록도 돼 있다.

윤 팀장은 “다소 황당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혁신적인 미래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며 “일반인에게도 타이어의 발전과 미래에 대해 알리면서 기업 이미지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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