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 덮친 美증시 폭락···내일 문여는 韓증시 초긴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R의 공포'가 고개를 들면서 세계 증시가 휘청였다. 장단기 국채 금리가 역전된 14일(현지시각) 뉴욕 지수는 전날 보다 3% 급락했다. 아시아 증시도 15일 동반 하락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R의 공포'가 고개를 들면서 세계 증시가 휘청였다. 장단기 국채 금리가 역전된 14일(현지시각) 뉴욕 지수는 전날 보다 3% 급락했다. 아시아 증시도 15일 동반 하락했다. [로이터=연합뉴스]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가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미국을 넘어 아시아 증시까지 먹구름을 드리우며 시장이 요동쳤다.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긴 방아쇠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었다. 채권시장의 ‘벤치마크’인 10년물 금리(수익률)가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보다 더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12년 만에 찾아온 장단기 금리 역전에 시장은 바짝 움츠러들었다.

2년물ㆍ10년물 채권 금리 역전돼 #2007년 역전 1년뒤 금융위기 발생 #중국 등 주요국 경제 부진도 한몫 #안전자산 선호로 금값은 치솟고

14일(현지시간)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수익률)는 장중 1.619%까지 떨어졌다. 2년물 미 국채 금리(1.628%)를 밑돌았다. 2년물 금리가 10년물 수익률을 앞선 것은 2007년 6월 이후 약 12년 만이다. 당시 미국은 금리 역전 이후 일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상 만기가 긴 장기 채권은 단기채보다 금리가 높다. 자금을 오래 빌려쓰는 기간에 따른 투자 위험을 높은 금리로 메워줬기 때문이다. 10년물 국채금리는 채권 시장의 벤치마크다. 경기와 물가 전반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 금리 등에 영향을 준다.

신한은행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채 10년물에 수요가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올랐다(금리 하락)”며 “상당수 채권투자자가 앞으로 미국 경제가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장기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2년물과 10년물 금리가 역전된 것은 1978년 이후 모두 5차례다. 평균 22개월 이후 예외없이 경기침체가 나타났다.

과거 2년물·10년물 금리 역전 이후 경기침체 동반

장단기 금리 역전에 놀란 시장이 더 흔들린 건 중국과 독일 등 주요국의 경제지표 부진이다. 세계 경제의 성장세를 이끌었던 두 나라 경제 둔화 조짐이 ‘경제 침체’의 불안감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는 중국의 7월 산업생산은 4.8%(전년 동기대비)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2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도 경제 성장세가 위축되는 모양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1% 감소하며 ‘역성장’ 했다.

커지는 ‘R의 공포’는 미국 주식 시장을 흔들었다. 14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3.05% 급락한 2만5479.42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하루 최대 낙폭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 역시 전날보다 3% 가량 하락했다.
증시 급락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준비제도(Fed) 때리기에 나섰다.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정신 나간(crazy) 수익률 곡선 역전”이라며 “우리는 쉽게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는데 연준이 다리를 잡고 있다”고 비판하며 금리 인하를 다시 한번 압박했다.

뉴욕 증시 급락 이어 아시아 증시도 동반 하락

미국에서 시작된 R의 공포는 아시아 증시로 번져왔다. 15일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동반 하락했다. 지난해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미국의 성장률이 한풀 꺾이고 부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증시 악재로 작용했다. 한국 증시는 이날 광복절을 맞아 휴장했다.
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전날보다 1.21% 내렸다. 대만 가권지수는 전날보다 0.96% 하락했다. 호주 증시는 전날보다 3% 가까이 급락했다. 중국 증시는 하루 내내 고전하다가 소폭 반등(0.25%)하며 마감했다.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ㆍ독일 등 세계 곳곳에서 하반기 경제가 부진할 수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세계 경제에 민감한 한국 금융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만큼 단기적으로 한국 주식시장과 채권금리를 끌어내리는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채권 금리의 장단기 역전현상을 ‘경기침체’ 지표로 삼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홍콩의 LGT은행 수석투자전략가 스테판 호퍼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으로 글로벌 경기가 침체의 위험에 처해있다고  확신하긴 어렵다”며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풀었기 때문에 장단기 역전현상도 왜곡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영증권의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증시는 그동안 많이 올랐기 때문에 타격이 클 수 있지만 지난해 말부터 줄곧 조정을 받아온 국내 증시의 하락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투자자의 자금은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값이 약 6년 만에 온스당 1500달러를 넘어섰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국제 금값은 전날보다 0.9%오른 온스당 1516.43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연초(온스당 1277.07달러) 이후 18.7% 급등했다.

염지현ㆍ김다영ㆍ정용환 기자 yj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