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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민연금 호가호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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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두 번째 세대가 낸 회비로 첫 번째 세대에 월급을 지급한다. 두 번째 세대에도 월급 지급을 약속한다. 그 돈은 그다음, 즉 세 번째 세대가 낸 회비에서 나온다.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된다. 그러다가 회비 납부자의 피라미드가 어느 순간 끝나면 이 시스템 역시 끝나버린다.’ 독일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하노 벡은 국민연금을 국가 주도의 ‘피라미드 시스템(다단계 판매)’에 비유했다.

모은 돈을 제대로 못 굴리거나 더 많이 쓰고, 돈을 낼 납부자가 줄어들면 피라미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딱 이런 지경이다. 소득대비 보험료율은 ‘마의 9%’에 갇혀 있다.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다. 연금 수령자는 늘지만 보험금을 낼 젊은이는 줄고 있다.

국민연금은 5월 말 기준 운용자금의 16.3%인 113조원을 국내주식에 투자했다. 자국 주식 투자 비중이 다른 나라 연기금보다 높다. 그럼에도 증시가 흔들리면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올해 투자 목표치(18%)까지 여력이 있다며 국민연금에 SOS를 칠 태세다.

오너 리스크 등으로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을 혼내주려 할 때 국민연금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명분은 운용 수익 극대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다. 사회적 책임까지 제대로 떠안을 위기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자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작년 말 기준 1조2300억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범 기업 투자 제한 법안도 발의됐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의 중립성을 위해 기금운용위원회의 수익률 평가 기준(벤치마크 지수)에 따라 투자를 결정한다. 하지만 수익률보다 이런저런 명분에 투자가 휩쓸릴 위기에 처했다. 국민연금이 제 돈인 양 호가호위하고 싶은 이들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눈먼 돈이 아니다. 그 주인인 국민의 노후자금이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