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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자유무역은 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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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모든 나라가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자유롭게 교환하면 부가 증가한다는 게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의 비교우위론이다. 세계는 ‘모두 잘 사는’ 자유무역의 이상 관철을 위해 노력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가 만들어졌고, 반세기 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진화했다. 세계는 모두 잘살게 됐을까. 여전히 미국·유럽을 위시한 북국(北國)이 부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아프리카·남미 같은 남국(南國)들은 빈곤하다. 한국은 ‘비싼 값’에 쌀을 생산하고, 베트남은 비교우위를 갖지 못한 자동차를 생산하려 한다. 불합리한 행태 같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WTO 출범 후에도 각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모두 잘사는’ 이상을 관철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패권을 쥔 국가일수록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의 ‘선한 의도’를 믿지 못한다. 중국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일본의 국민총생산(GNI)은 5조1598억 달러로 세계 3위지만 2012년(6조3690억 달러)의 80%에 그쳤다. 따져보면 1995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238%로 압도적 세계 1위다. 경제성장률은 0.7%였다. 경제강국이라지만 외화내빈이다.

‘모두 잘 사는 법’을 알지만 비교우위를 갖지 못한 국내 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발생하면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에 패한다. GATT가, WTO가 이상적으로 진화한 것 같지만, 패권국들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룰을 바꾸고 판을 뒤엎었다. 밀턴 프리드먼은 “나쁜 시장이 착한 정부보다 낫다”고 했다. 하물며 ‘나쁜 정부’ ‘어리석은 정부’는 오죽하랴. 리카도가 무덤에서 땅을 칠 일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