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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철 지난 종속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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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철학자 탁석산씨는 저서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한국인의 특성을 이렇게 예시한다. “물고기를 보면 어떤 원리로 물속에서 저렇게 움직이는가에 관심을 갖기보다 어떻게 요리를 하면 더 맛있을까 궁리한다.” 즉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원리 탐구보다는 즉각적으로 보고, 만지고, 맛보고, 듣는 ‘감각’을 중시한다는 거다. 이를 탁씨는 감각적 쾌락주의 혹은 인생주의로 칭했다.

한국인의 이같은 특성은 “기초가 약하다”는 부정적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딴 거 잘하면 되잖아”라는 식으로 바뀌는 경향이다. 약점(기초) 보완에만 목을 매기보다 강점(감각)을 살려 가성비를 높이면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K-팝, K-푸드 등이 이를 증명했고, ‘퍼스트무버’(선도자)가 아닌 ‘패스트팔로어’(추종자)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한 것도 한국이다. 외려 해외에선 한국의 응응력·순발력 등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대일 경제전쟁 국면에서 청와대·정부 인사가 꺼낸 게 ‘가마우지 경제론’이다. 가마우지라는 새(한국)처럼 목에 줄이 묶여 먹이를 물어도 삼키지 못한 채 몽땅 주인(일본)에게 빼앗기는 게 한국 경제라는 논리다. 하지만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반도체 제조용장비 수입액 52억4200만 달러 등 반도체의 일본 관련 수입액은 178억 달러 안팎이었다. 반면 지난해 한국 반도체의 해외 수출액은 1260억 달러였다. 수치상으론 일본 원료를 적절히 가공해 배불리 삼킨 셈 아닌가.

삼성전자가 소니 등 일본 전자기업을 압도한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글로벌 분업구조를 외면한 채 철 지난 지배-피지배의 종속이론을 제기하는 건 왜일까. 시중엔 “한국 경제보다 386의 정신세계가 가마우지 같다”는 얘기가 많다.

최민우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