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안리 공중화장실서 가스 흡입 여고생 8일째 의식불명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오전 3시 40분 부산 광안리 회타운 내 지하 1층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던 백모(19)양이 유독가스를 흡입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지난달 29일 오전 3시 40분 부산 광안리 회타운 내 지하 1층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던 백모(19)양이 유독가스를 흡입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의 한 공중화장실에서 여고생이 유독가스를 흡입해 5일 기준 8일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해당 공중화장실은 부산 수영구청이 관리하는 것으로 20년간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관리소홀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이곳은 여름철 피서객이 몰리는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이어서 철저한 원인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수사결과 배기장치 오작동 #황화수소 농도 기준치 10배 초과 #경찰 “관할 구청 과실 여부 조사”

이번 사고는 지난달 29일 오전 3시 40분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회타운 건물내 지하 1층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했다. 부산에서 해운대 해수욕장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광안리 해수욕장은 피서철에 하루 평균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고3인 백모(19)양이 이날 공중화장실에 들어간 지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함께 광안리 해수욕장에 놀러온 친구(19)가 뒤따라 들어갔다. 친구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백양을 발견했고, 현장에서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백양의 친구 역시 유독가스에 노출돼 두 차례 의식을 잃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백양을 화장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백양은 5일 현재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다.

이번 사고는 오수처리시설에서 오수를 퍼 올리는 펌프질 작업 과정에서 유독가스인 황화수소가 공중화장실로 유입돼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펌프질 작업은 매일 오전 3시~4시에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황화수소가 발생하며 배기장치를 거쳐 배출되게 된다. 하지만 배기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높은 농도의 황화수소가 화장실 내 배수 구멍을 통해 올라온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은 지난 2일 오전 3시 20분 해당 장소에서 황화수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100ppm을 초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해 한도 기준인 10~20ppm의 5~10배 이상 수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공중화장실 세면대 바닥에 있는 5㎝가량의 배수 구멍을 통해 황화수소가 올라온 것으로 조사됐다”며 "배기장치 등의 시설에 문제가 생겨 유독가스를 배출 통로로 충분히 빼내지 못해 화장실 배수구로 황화수소가 새어 나왔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당 공중화장실은 수영구청이 회타운 건물주 측과 1998년 무상사용 계약을 맺고 관광객을 위한 공중 화장실로 활용해왔다.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1988년이다. 백양의 언니라고 밝힌 A씨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A씨는 “구청 직원은 환풍기가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대답만 하고,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며 “(구청이) 공공시설을 관리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무엇을 믿고 이용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중화장실에서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않게 신속한 조치와 해당 공무원의 파면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 글은 현재 7200명의 동의를 받았다.

수영구청은 전체 건물 중 화장실만 공공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오수처리시설 관리는 회타운 건물주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오수처리시설이 있는 건물에 대한 점검기준은 하루 배출량 300t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 건물은 140t가량이다”며 “안전점검 책임은 건물주에게 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수영구 공무원의 과실 책임이 있는지 따져볼 계획이다.

부산에는 601개의 공중화장실이 있지만, 사고가 난 공중화장실과 유사한 형태는 이곳 뿐이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사고 이후 해당 화장실을 폐쇄했다.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사용을 중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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