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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투톱에서도 못 본 장면"…삐걱대던 황교안·나경원 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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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핵외교안보특별위원회' 안보실정백서 북콘서트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핵외교안보특별위원회' 안보실정백서 북콘서트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뉴스1]

 여권의 초강세가 이어지면서 야권, 특히 제1야당의 리더십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견제 세력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 혹은 장차 대안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특히 주목받는 이는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다. 둘의 동역학을 탐구한다.

2일 오전 11시 자유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 3차 회의 직전. 국회 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온 나경원 원내대표는 곧바로 황교안 대표실로 향했다. 회의 발언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황 대표는 대책특위 회의를 가기 위해 대표실 밖에 있었다. 둘은 회의를 가는 도중 딱 붙어서 긴밀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걷는 도중 나 원내대표가 잠시 뒤처지자, 황 대표는 “제 옆으로 오시라”며 걸음을 늦췄다. 그러자 나 원내대표는 “이제는 대표님 오른쪽에서 걷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당 지도부 인사는 “나 원내대표는 황 대표와 회의가 있으면 항상 먼저 대표실을 방문해 현안 보고를 한 뒤 같이 이동한다. 역대 어느 투톱(대표-원내대표)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이라고 전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 긴급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 긴급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한국당 투톱의 '케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초반 둘은 다소 삐걱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정계 입문하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일거에 집중됐기에 둘 간에 미묘한 긴장감 같은 게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황 대표가 입당한 다음날(1월 16일) 열린 자유한국당 연찬회에서 나 원내대표는 ”‘친박-비박’을 넘어섰더니 ‘친황’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KBS 수신료 거부 서명운동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KBS 수신료 거부 서명운동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①호흡은 OK, 경쟁에서 공생으로
4월 재·보궐 선거를 사실상 승리로 이끈 뒤 양측의 신경전은 적지 않았다.

4월 말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밤샘농성 등 대여투쟁을 주도하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후 5월에는 황 대표가 전국을 돌며 장외집회를 주도했다. “최악의 경제를 만든 문재인 정권은 분명 최악의 정권”(5월 22일 페이스북) 등 독한 언어를 내놓았다.

당시 정치권에선 한국당이 원 내외에서 투쟁 수위를 최고조로 올리는 배경엔 투톱 간의 경쟁심리도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역인 나 원내대표는 대여투쟁의 중심을 원내로 두는 반면, 원외인 황 대표는 자신의 활동공간이 넓어지는 장외를 선호해 서로에게 적합한 공간으로 끌고 가려 했다는 것이다. '비(非) 배지' 당 대표와 배지 원내대표 간의 미묘함이다. 여기에다 외부에서 지도자로 수혈된 황 대표와, 원내대표를 발판으로 지도자 반열로 올라서려는 나 원내대표 간 긴장도 있었다.

실제로 지방에서 당 의원들이 행사를 열면 대표ㆍ원내대표를 모두 초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실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볼멘소릴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님이 원내전략 짜기도 바쁠 텐데 지방까지 갈 시간이 있겠느냐”는 식이다. 이와 관련 한 한국당 의원은 “인지도로 봤을 땐 나 원내대표의 현장 호응이 더 크다. 갈등 관계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자신보다 더 큰 박수를 받는 다른 정치인이 신경 쓰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뉴스1]

하지만 5월 한국당 장외투쟁이 일단락되면서 양측의 신경전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가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황 대표 측 관계자는 “황 대표는 물론 나 원내대표 역시 친박 혹은 비박의 계파색이 강한 이들은 아니지 않나. 자연히 당내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최근 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두 사람 공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자연스레 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나 원내대표 측 인사도 “어떤 사안이 발생해서 나 원내대표에게 ‘황 대표와 상의해보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건의 드리면 ‘이미 통화했다’는 답을 들을 때가 많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3월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3월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②시너지는 아직
다만 당내에선 둘의 조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법조인 출신의 엇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어 시너지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친밀감·소탈함·포용력 등 인간적 체취가 강한 정치인이 아니란 공통점도 있다.

한국당의 한 초선 의원은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모두 법조인이다 보니 논리에 강하지만 정치적 상상력이나 감성을 파고드는 언어에는 약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야당 지도부라면 설명하기보다 강한 야성으로 맞받아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여권의 토착왜구 공격에 논리적으로만 반박하다 보니 '친일 프레임'에 계속 함몰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한국당 중진 의원은 "정치판에서 이기려면 때론 거친 싸움도 필요한데 둘은 이에 대해 근본적 거부감이 있다"며 "둘이 회의 석상에서 내놓는 언어가 정제되고 논리정연하긴 하지만, 대중의 가슴을 흥분시키진 못한다. 자칫 ‘잘난 척 콤비’로 보일 수 있다”고 전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양측은 부인하지만 공교롭게 주요 보직이 상당수 친박계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도로 친박당’이라는 프레임에 묶여버린 것도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위기에 맞을 때마다 신인 발굴로 판을 흔들곤 했다"며 "황교안-나경원 투톱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과감한 외부 수혈로 보수진영의 세대교체를 주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성운·김준영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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