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휴가지서 참관 가능성…“한·미훈련 손보겠단 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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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

지난 23일 전략무기인 잠수함(3000t급 추정)을 공개한 북한이 25일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쏘며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북한의 ‘이상 기류’는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시점에서 드러나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 이후 이달 중 실무협상 개최를 준비해 왔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시 “수주 내 실무협상 재개”를 약속했다.

쌀 지원 거부, 이용호 ARF 불참 #나포 한국선원 송환 요구에도 침묵 #실무협상 앞두고 또 벼랑 끝 전술

미국은 15일을 전후해 북한이 협상 장소와 일정을 통보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16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카드를 내밀었다. 북한은 이달 말 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이용호 외무상을 보내지 않겠다는 의사도 알렸다. 한·미 당국은 ARF 기간 남북, 북·미 외무장관 접촉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다. 북한은 한국의 쌀 지원 제안도 거부했다. 이어 지난 17일 나포된 러시아 선박에 타고 있던 한국인 선원 2명의 안전 확인과 송환 요구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라고만 할 뿐 묵묵부답이다.

북한이 협상 착수의 기대감을 차단한 뒤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는 고슴도치 전략을 구사하며 비핵화 협상과는 정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는 북한의 새로운 벼랑 끝 전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연말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연말까지 뭔가를 만들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지난해처럼 북한이 다가가는 게 아니라 미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5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동해 방향으로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각각 430km, 690km를 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5월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 [연합뉴스]

북한은 25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동해 방향으로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각각 430km, 690km를 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5월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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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북한이 이날 강원도 원산에서 쏜 미사일은 각각 430㎞와 690㎞를 날아갔는데, 발사 지점에서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위치한 경북 성주(390㎞)와 제주도(650㎞)가 각각 사정권에 드는 거리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연말까지 협상 시한을 정한 북한이 다소 서두르는 모습”이라며 “전쟁이냐 대화냐 양자택일하라는 북한식 독촉술”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극도로 경계하는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닌 단거리 미사일로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레드라인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경고다.

이번 기회에 한·미 연합훈련을 근본적으로 손보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되면 군부대 방문이나 미사일 발사로 응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 16일 외무성 대변인이 나서 공개 반발한 데 이어 잠수함을 공개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반발하자 한·미는 ‘동맹’이라는 훈련 이름을 없애고 저강도로 진행할 수 있다는 의사를 언론을 통해 내비쳤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대화나 협상에 나올 생각이 없으면 아예 응대하지 않는다”며 “한·미가 북한의 반발에 다소 멈칫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 약속을 받아내려고 더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봤다.

정보당국은 김정은 위원장이 호도반도 현장에서 미사일 발사를 지켜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최근 김 위원장이 인근 지역에서 체류하며 공개 활동이 있었고, 관련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호도반도에서 멀지 않은 원산에서 휴가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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