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가짜 투자상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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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0대 가짜 투자상담사가 증권사 객장에 개인 사무실을 차려놓고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지역 부유층 여성들을 상대로 100여억원을 챙겨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성남시 분당구 미래에셋증권 정자지점에 투자상담사 사무실을 차려놓고 투자자 18명에게서 107억2000여만원을 챙겨 달아난 혐의로 이모(37)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4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이 증권사 지점 VIP 고객실(2평)에 여비서를 두고 주식시세 확인용 컴퓨터 등 사무집기를 비치해 증권사 간부행세를 하며 1인당 3000만~60억원씩의 투자금을 모집했다.

이씨는 증권사 감사팀이 조사에 들어가자 지난달 26일 잠적했다. 증권사는 다음날 이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2004년 9월 개점 초기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던 미래에셋 정자지점에 "1000억원대의 펀드를 운용하는데 수수료 수입을 보장해줄 테니 VIP 고객실을 사용하게 해달라"며 접근했다.

이씨는 이 증권사 부장 명함을 만들어 사용하고 개인 투자자들에게 '미래에셋 이○○ 부장'이라고 직인이 찍힌 '투자약정서'까지 교부했다. 그는 처음엔 고객이 맡긴 투자금으로 적립식 펀드 등에 투자해 한 달에 200만~300만원의 수익을 만들어주고 지점 측에는 600만~700만원의 주식거래 수수료 실적을 올려주며 신뢰를 쌓았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 18명 중 14명이 강남.분당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찰에서 이씨가 국내외 명문대학 MBA 과정을 이수했다고 소개하고 BMW 승용차에다 양복은 물론 넥타이.시계 등 액세서리를 외제 명품으로 치장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객장 전화를 개인용으로 사용하고 직원들과 수시로 회식자리를 여는 등 증권사 직원들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어 공모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점=증권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관행적으로 거래금액이 많은 고객에게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씨처럼 증권사 투자상담사나 간부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고객의 투자 상담을 자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적지 않기 때문에 증권사에서 눈을 감아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일반 투자자들이 언제든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성남=정영진 기자,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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