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범 안 했다" 러 입장 받은 軍···靑은 "러 유감 표명" 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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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4일 기자들 앞에 두 번 섰다. 주제는 전날 러시아의 한국 영공 침공 건이었는데, 그가 전한 러시아 측의 ‘공식 입장’은 정반대였다.

먼저 오전 11시 18분 시작된 브리핑에서 그가 전한 러시아 측의 메시지는 ‘깊은 유감 표명’이었다. 윤 수석은 전날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차석 무관이 국방부 정책기획관에게 전한 내용을 소개했다. 차석 무관의 메시지에는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측이 가진 영공 침범 시간, 위치 좌표, 캡처 사진, 이런 것들을 전달해 주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거나 “러시아 국방부에서 즉각 조사에 착수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 의도를 갖고 침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한국 측이 믿어주기 바란다”와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윤 수석은 이어 “일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리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보도도 하고 그랬는데 전체 상황이 이렇다”는 말도 했다. NSC를 개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상황 설명에 나선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러시아와의 갈등이 확대되는 걸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담겼던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인한 한·일 갈등이 점증하는 국면에서 또 다른 안보 이슈가 돌출하는 게 달갑지 않은 데다, 일본이 통제 중인 전략 물품의 대안 중 하나로 러시아산 불화수소(에칭 가스)가 거론되는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이날 오후 국방부가 “러시아로부터 자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조종사들이 자국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비전문적인 비행을 했다는 내용의 공식 전문을 접수했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는 윤 수석이 공개한 러시아 무관의 ‘깊은 유감’과는 상반된 내용으로, 오히려 한국 공군 측에 “유사한 비행이 반복되면 대응할 수 있다. 대응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적반하장 식 반응도 포함돼있었다.

윤 수석은 오후 6시 15분 다시 브리핑을 시작했다. 러시아가 보낸 전문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 그는 “조종사 교신 음성, 비상주파수 교신 내용 등 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열람시켜주고, 영공을 침범한 사실을 입증시키겠다. 그러니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게 우리의 요구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어제 ‘한국 영공을 침범한 적 없다’며 언론보도문을 냈다. 러시아 차석 무관의 얘기와 내용이 다르다.
“(장관의 언론보도문은) 공식 입장이 아닌 거로 판단하고 있다. 무관을 통한 메시지나 전문이 공식 입장이다.”
무관 얘기를 전달한 이유는 뭔가.
“필요에 의해 전달했다.”
러시아 차석 무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을 수 있는데 브리핑한 이유는.
“공식 입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무관의 입장은 공식 입장이다.”
러시아의 어제 공식 입장과 오늘 공식 입장이 다르다?
“그렇다.”
러시아 공식 입장이 왜 바뀌었다고 보나.
“짐작하는 이유는 더러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힐 건 아닌 것 같다. 짐작만 할 뿐이다.”
러시아 공식 입장을 국방부가 오전에 받았다는데. 오전 브리핑 때 보고받지 않았나.
“그때는 내가 모르는 내용이었다.”  
수석이 무관 이야기를 소개한 건 사태를 키우고 싶지 않은 청와대의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닌가.
“그런 건 아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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