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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이란 자산동결 검토"…유조선 억류 이란에 제재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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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지블로터 해경이 억류 중인 이란 유조선을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령 지블로터 해경이 억류 중인 이란 유조선을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이 영국 국기를 단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억류한 데 대해 영국 정부가 자산 동결을 포함한 제재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란은 “영국이 미국의 경제 테러리즘의 장신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며 억류가 국제 해양 법규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프랑스·독일도 "억류 유조선 석방하라" 요구 #英 전 제독 "오산이나 무모한 행동 전쟁 야기" #이란 "영국, 美 경제 테러의 장신구 안 돼야" #원유 루트 호르무즈 해협 긴장에 국제유가 ↑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 대치가 시작됐다. 하지만 미국 요청으로 영국이 지브롤터 해역에서 이란 유조선을 억류하면서, 갈등 양상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이란으로 확대돼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AP=연합뉴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AP=연합뉴스]

 영국은 19~20일(현지시간) 내각의 긴급 안보관계 장관 회의인 ‘코브라'를 잇따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이란에 불법적인 억류를 풀라고 요구했다. 텔레그래프는 영국 정부가 자산 동결을 포함해 이란 정권을 조준한 재재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엔 사무총장에 서한을 보내 이란의 유조선 나포를 ‘불법적 간섭’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함께 이란 핵 합의 유지 입장인 프랑스·독일 정부도 이란에 유조선 석방을 요구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성명에서 “선박과 선원을 즉각 석방하고 걸프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 원칙을 지켜달라"고 이란 측에 요구했다. 이어 “이란의 억류는 걸프 지역에 필요한 긴장 완화를 가로막는다"고 덧붙였다. 독일 외무부도 “이란에 즉각 선박을 풀어주라"고 거들었다.

영국령 지블로터 해역에 영국 측이 억류한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1 호가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령 지블로터 해역에 영국 측이 억류한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1 호가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은 해당 유조선 억류가 국제적 해양 법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20일 트위터에서 “이란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를 지켜왔다. 영국은 더는 미국의 ‘경제 테러리즘'(제재)의 장신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올렸다.

 이란은 임페로 호가 자국 어선과 충돌한 것이 억류의 시발점이었다고 했지만, 지난 4일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자국 초대형 유조선을 억류한 데 대한 반발 차원이 크다. 헌트 외무장관은 영국 국기를 단 선박의 안전을 고려해 호르무즈 해협의 이용을 피하라고 경고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이란의 유조선 억류는 24일 새 총리로 취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에게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존슨 전 장관은 자신의 총리직 경쟁자이자 코브라의 멤버인 헌트 장관으로부터 정부의 대응책과 상황을 전달받고 있다. 존슨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성향이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직 해군 제독인 로드 웨스트는 옵서버 기고에서 “이번 위기는 영국 정치권이 새 총리를 뽑는 데 초점을 맞춘 상황에서 발생했다"며 “영국 정부가 유조선 등의 보호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취임하자마자 중대한 국제적 위기를 대면해야 한다"며 “오산과 무모한 행동은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왼쪽)이 베네주엘라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이다. [EPA=연합뉴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왼쪽)이 베네주엘라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이다. [EPA=연합뉴스]

유조선 억류가 장기화할 경우 영국, 프랑스, 독일이 유지해오던 이란 핵 합의에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란은 유럽이 9월 5일까지 이란산 원유 수입에 나서지 않으면 핵 합의에 따른 이행 사항은 더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이란의 영국 유조선 억류에 따라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지난 19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33센트(0.6%) 오른 55.63달러에 거래를 끝냈다.

이란의 유조선 억류는 강경파인 이란 혁명군이 이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을 가할 때마다 이란 혁명군 지도부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영국 새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AFP=연합뉴스]

영국 새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AFP=연합뉴스]

에콰도르를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과 한 회견에서 “근본적 변화 징후는 없지만 이란 정권이 결국에는 정상 국가처럼 행동하고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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