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당신 해고야" 21세기 중국의 남존여비…NYT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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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성들이 직면한 남녀 차별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사진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천안문 광장에 나온 중국 여성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중국 여성들이 직면한 남녀 차별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사진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일 천안문 광장에 나온 중국 여성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임신했다면 해고 감이다. 중국 얘기다. 뉴욕타임스(NYT) 17일자에 따르면 톈진(天津)에 거주하는 32세 회사원인 벨라 왕의 동료에게 최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왕씨는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무역학 학위도 취득한 엘리트이지만 최근 한 회사에 관리직으로 취업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힌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지시 받았다. “앞으로 2년 동안 임신을 할 경우 회사는 일체의 보상 없이 해고 통보를 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왕씨는 NYT에 “화가 치밀었지만 일은 하고 싶었기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동료가 임신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기 때문. 2017년 한 설문조사에서 54%의 여성 응답자가 “면접에서 결혼상태 및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답했다.

중국 베이징 금융가인 진롱지. 최근 중국 기업들은 공공연히 남성 우대 채용 정책을 편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중앙포토]

중국 베이징 금융가인 진롱지. 최근 중국 기업들은 공공연히 남성 우대 채용 정책을 편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중앙포토]

이혼도 여성에 불리하다. 신분노출을 꺼려 ‘샤론 샤오’라는 익명을 쓴 36세 여성은 남편의 구타와 바람기를 견디다 못해 2013년 이혼 소송을 했다. 연애 시절, 박사 과정 중이던 남편보다 그가 먼저 취업을 했고, 이들은 남편의 부모님에게 약간의 투자금을 받고 샤오가 월급을 털어 집을 장만했다. 남들 하듯이 명의를 남편 단일 명의로 했던 게 화근이 됐다. 이혼 소송을 하며 재산 분할을 받고자 했지만 샤오의 변호사조차 그에게 “이혼을 하면 부동산은 당연히 남편이 갖기 마련이니 희망을 버리라”는 말을 들었다. 샤오는 “내가 바보였다”며 “이혼 후 가진 것 없이 그냥 떠도는 듯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같은 성차별은 중국에서도 불법이지만 공산당의 영향력 아래 있는 법원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중국의 성평등 지수는 2008년 57위였으나 지난해에 139위로 추락했다.

최근엔 중국 기업뿐 아니라 일부 정부기관까지도 공공연히 “남성 우대”를 채용 조건으로 걸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비정부기구(NGO)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조사 결과다. 이유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출산 및 육아 휴가 등에 따르는 비용을 지급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NYT는 전했다.

한ㆍ중ㆍ일 동북아 3국 중 중국은 성평등 의식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인식이 있지만 최근엔 그렇지도 않다고 뉴욕타임스(NYT)의 결론이다.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며 남녀 평등을 강조했다. 중국은 3월8일인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성 근로자들에겐 반일 휴가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같은 기류가 확연히 바뀌었다는 게 NYT의 지적이다.

뉴욕타임스 7월17일자. 중국의 남녀차별이 다양한 분야에서 심각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 캡처]

뉴욕타임스 7월17일자. 중국의 남녀차별이 다양한 분야에서 심각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 캡처]

문제의 근원은 중국의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한 고령화다. 한 자녀 정책 추진 당시 중국 정부는 여성의 사회 활동을 장려했다. 그러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부의 기조는 달라졌다. 시 주석도 최근엔 “가정에서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NYT는 시 주석이 “집안의 어른과 어린이를 돌보고 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고 지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 자녀 정책의 시대가 끝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부양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성에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NYT는 분석했다. “결국 시 주석 체제 하에서 중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일터가 아닌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미시건대에서 여성학을 전공하는 중국계 교수인 왕 젱은 NYT에 “한때 중국 정부는 여성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했고, 이제는 아이를 낳는 데 집중하라고 떠밀고 있다”며 “시 주석의 발언은 (남녀평등을 주창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은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페미니스트 학자인 펑 유안은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리에 있어서만큼은 중국은 우위를 달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중국은 뒤쳐지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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