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온 추락' 1년 지났지만…유족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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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에서 치러진 마린온 추락사고 1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 도중 오열하고 있다. 포항=김정석 기자

17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에서 치러진 마린온 추락사고 1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 도중 오열하고 있다. 포항=김정석 기자

지난해 7월 시험비행 중 추락한 ‘마린온’ 헬기 희생 장병 5명의 추모식이 17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 주둔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은 “아직 사고 책임 규명을 위한 수사가 시작도 안 돼 고인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7일 해병대 1사단서 '마린온' 1주기 추모식 #순직 장병 유족들 헌화·분향하며 오열 #유가족들 "책임기관 고소했지만 조사 제자리"

이날 추모식은 지난 3월 설치된 마린온 추락사고 순직 장병 위령탑 앞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고인의 유가족과 해병대 장병, 지역 정치인과 군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마린온 추락사고’는 지난해 7월 17일 시험비행 중이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1대가 13.7m 상공에서 추락해 주임무조종사 김정일 대령과 임무조종사 노동환 중령, 정비사 김진화 상사, 승무원 김세영 중사와 박재우 병장(이상 추서계급) 등 5명이 순직하고 정비사 김용순 상사가 크게 다친 사고다.

해병대가 지난해 8월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 사고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가 지난해 8월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 사고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모식은 국민의례, 순직자 약력 소개, 조총과 묵념으로 시작됐다. 눈물을 참고 있던 유가족은 헌화와 분향 순서에서 위령탑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눈물을 터뜨렸다. 위령탑에는 순직 장병 5명의 얼굴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일부 유족은 손으로 얼굴 부조를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유가족 헌화와 분향이 끝난 뒤엔 심승섭 해군참모총장과 이승도 해병대사령관, 최현국 합참차장,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 김현종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 등이 차례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박신한 대구지방보훈청장과 박명재(포항남·울릉)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 윤종진 경북도 행정부지사,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도 분향했다.

이어진 유가족 추모사에선 순직 장병을 그리워하기보다 지지부진한 책임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유가족 대표로 나선 고(故) 노동환 중령의 아버지 노승헌(67)씨는 “유가족은 마린온 추락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의 재발을 막고 항공기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제조상의 책임 소재를 밝히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검찰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을 형사 고소했다. 그런데 1년이 되도록 아무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7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서 열린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 순직 장병 1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이 위령탑에 새겨진 부조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서 열린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 순직 장병 1주기 추모식에서 유족이 위령탑에 새겨진 부조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족이 카이를 형사 고소한 것은 지난해 12월 마린온 추락사고의 원인이 핵심 부품인 ‘로터마스트’ 결함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헬기 엔진에서 동력을 받아 프로펠러를 돌게 하는 중심축인 로터마스트는 카이가 에어버스헬리콥터(A.H.)사로부터 수입해 제작했다. 민·관·군 합동 사고조사위원회가 이 같은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카이는 “이번 사고조사위의 최종 발표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철저한 품질관리로 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와 관련해 순직한 박재우 병장의 유가족은 16일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조속한 수사 진행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3일과 같은 달 19일에 이어 세 번째 진정서 제출이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1주기 추모식을 앞둔 현재 시점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사망사고를 일으킨 관계자 중 단 한명도 입건조차 되지 않고 있기에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재촉구하는 서한을 보낸다”고 했다.

노승헌씨는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아픔만으로도 아직 너무 힘이 든다. 조용히 순직 해병을 추모하며 유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마음을 쏟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며 “순직한 해병도 하늘에서 남은 가족의 안녕을 바랄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렇게 되도록 응원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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