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日 경제에 더 큰 피해갈 것 경고한다" 작심 강경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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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마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마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제한에 대해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건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양국은 과거사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그로 인해 경제·문화·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 발언을 통해 문 대통령은 “중대한 도전”, “성장을 가로막은 것”,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 같은 표현을 써가며 작심한 듯 대일(對日)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를 “반세기간 축적해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제조업 분야는 한국이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겪으면서도 국제분업 질서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함께 성장해왔다”면서다. 그러곤 우리 핵심산업인 반도체 소재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수입처 다변화와 국산화 등을 언급하며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는동안 김상조 정책실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는동안 김상조 정책실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이 제기한 전략물자 수출 부실 관리 의혹에 대해선 ‘우방국’이란 단어를 써가며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당초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수출제한) 조치 이유로 내세웠다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 의혹이 있기 때문인 양 말을 바꿨다”며 “우방국으로서 한국에 먼저 문제를 제기하면 될 터인데 사전에 아무 말이 없다가 느닷없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논란의 과정에서 오히려 일본의 수출 통제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외교적 논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유연하게 가져가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원만한 외교적 해결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는데, 우리가 제시한 방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는 없다”면서다. 정부가 최근 일본에 제안했다 거절당한 ‘1+1’(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보상) 제안을 가리킨 듯하다. 문 대통령은 “양국 국민과 피해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논의해보잔 것이었다”며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어떤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제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신 “국회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도 당부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엄중히 본다면 협력을 서둘러 주실 것을 간곡하게 당부드린다”고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 일본 대응 발언 어떻게 변해왔나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이)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10일 청와대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

“전남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린 곳. 전남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12일 전남지역 경제투어)

“우리 경제 성장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둔다”(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문 대통령의 이날 ‘작심 발언’은 며칠째 이어지는 청와대의 대일(對日) 강경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와 관련해 청와대는 초기엔 직접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기업의 피해가 가시화하면서 8일 “기업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8일 처음 나왔고, 발언 수위는 “더는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10일, 경제인 초청 긴급 간담회),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12일, 전남지역 경제 투어) 등으로 점증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 중 특히, ‘우방국’을 직접 언급한 것은 함의가 복잡하다고 한다. 최근 화이트 리스트 배제 통보 등 최근 일본의 조치에 대해 여권에서는 “우방국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인사가 많다. 이는 곧, 향후 양국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더는 우방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런 반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 지도자가 실무자처럼 항목별로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반박한 게 국민 정서에는 시원할 수 있겠지만 향후 협상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사실 일본의 조치는 실제 효과는 수출 지연 정도일 텐데, 우리가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대통령이 직접 말하기보단 국무총리나 외교 장관이 나서야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에선 “대통령이 나서 해결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싸움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참모들이 로키(low-key, 낮은 수위)로 관리하자고 제안하는데, '국제법상 우리가 잘못한 게 없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워낙에 강하다. 결국 일본이 철회해야 될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호·위문희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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