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전 대법원 판례…숙명여고 쌍둥이 딸에게 탈출구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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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문제 유출 혐의를 받는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모씨가 4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업무방해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시험문제 유출 혐의를 받는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모씨가 4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업무방해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숙명여고 현모 전 교무부장이 12일 항소심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법조계 "아버지의 혐의 부인, 쌍둥이 재판에 불리할 것"

그의 변호인은 이날 "피고인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직접 증거가 전혀 없다"며 "무고한 사람이 죄를 받는 상황"이라고 억울함을 표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전 교무부장의 변론 전략이 함께 기소된 쌍둥이 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버지가 혐의를 부인하면서 딸들이 재판에서 감형을 받기 위한 변론의 폭이 대폭 좁아지기 때문이다.

주영글 변호사(법률사무소 해내)는 "아버지가 혐의를 전면 부인해 공범인 딸들도 혐의를 부인하는 것 말고는 변론 전략이 마땅치 않다"며 "재판부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1심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딸들에게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숙명여고 시험문제·정답 유출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2018년 11월 12일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교장, 교사의 성적 조작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숙명여고 시험문제·정답 유출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2018년 11월 12일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교장, 교사의 성적 조작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검·경 수사단계에서 확인된 간접증거만으로 시험 유출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전 교무부장에게 3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쌍둥이 딸들도 이후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현씨가 유죄 인정하면…딸들 감형 가능성도

현 전 교무부장 측은 실제 시험문제를 유출하지 않아 현재 상황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전 교무부장과 쌍둥이 딸들은 수사부터 현재 재판에 이르기까지 혐의를 인정하는 자백을 하지 않았다.

형사법 전문가인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아버지와 딸들이 업무방해의 공범으로 기소된 상황이라 한 명이라도 자백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변론 전략이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아버지가 혐의를 인정할 경우 쌍둥이 딸들이 최대 무죄나 감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버지가 딸들에게 시험 문제와 정답을 보여줬을 때 딸들이 이를 거절할 가능성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기대가능성'의 법리를 따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평범한 수험생 우연히 답 알게 되면 거부 못 한다" 

1966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법원은 응시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탐지한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시험문제와 정답을 알게 됐을 때 "그 답안을 시험지에 기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수험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평범한 수험생이라면 우연히 알게 된 답을 시험지에 적지 않을 '기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의 압수품인 시험지. 시험지에 해당 시험 문제의 정답(빨간 원)이 적혀있다. [연합뉴스]

서울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의 압수품인 시험지. 시험지에 해당 시험 문제의 정답(빨간 원)이 적혀있다. [연합뉴스]

주영글 변호사는 "전 교무부장이 문제유출 혐의를 인정할 경우 딸들의 변호인이 이 판례를 근거로 무죄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답을 전달하며 암기하라는 아버지의 '우연한 요구'를 딸의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었다는 논리다.

다만 주 변호사는 "쌍둥이들이 한번이 아닌 여러 차례에 걸쳐 시험 문제와 정답을 전달받았다는 정황이 있다"며 "재판부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전면적으로 부인할 때보다는 감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주필 변호사는 "전 교무부장과 딸들이 수사 단계에서 자백을 했다면 중요한 감형 사유가 되겠지만 재판을 받게 된 이후에 자백을 하는 것은 양형에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과 별개로 변호인이 재판부에 '기대 가능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현씨 측, 반격 카드 "성적 급상승 사례 찾겠다"

전 교무부장의 변호인단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겠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관용)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방대한 간접증거에 대응할 변론 내용이 많다며 재판부에 40분간 프레젠테이션(PT)을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숙명여고 인근 3개 여고를 대상으로 쌍둥이 딸과 같이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이 불일치하고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한 사실조회도 요청했다. 재판부는 PT 변론은 받아들였지만 사실조회 여부에 대해선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현씨의 변호를 맡은 임정수 변호사(법무법인 신지)는 "우리는 다른 생각 없이 모두 무죄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라며 "객관적 사실과 증거 없이 형사 처벌을 받는다면 이는 전 교무부장의 자녀가 숙명여고를 다녔다는 이유 말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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