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축시법 펼쳐졌다" 北 이번엔 건축물로 김정은 띄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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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비핵화 실무 협상에 나서는 북한이 11일  ‘전설 속의 축시법(縮時法)’이라는 표현을 꺼내 들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2면과 3면에 1만 3700여자에 달하는 정론과 과학기술전당ㆍ평양국제비행장 터미널 등 김정은 시대에 건설한 대표적인 건축물 사진 24장을 실었다. ‘노동당시대의 대건설교향곡, 건설의 대번영기로 천지개벽의 새 력사를 펼쳐가시는 위대한 김정은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노래하며’란 제목이다. 정론은 “건축은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예술”이라며 “오늘의 시대는 말그대로 세월을 뛰여(뛰어)넘고 시간을 주름잡는다는 전설속의 축시법이 현실로 펼쳐지는 희한한 기적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김 위원장 시대를 맞아 시간을 단축하는 전설적인 축시법을 방불케 하는 건설의 성과를 올렸다는 취지다.

북한이 11일 노동신문 2면과 3면에 정론을 싣고 '전설 속의 축시법'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의 건설 성과를 소개했다. [노동신문 인터넷판 캡처]

북한이 11일 노동신문 2면과 3면에 정론을 싣고 '전설 속의 축시법'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의 건설 성과를 소개했다. [노동신문 인터넷판 캡처]

이날 정론은 김 위원장 집권 후 2012년부터 현재까지 건설했거나, 건설 중인 대규모 건축물을 연도별로 보여주며 ‘성과’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주도해 건설한 옥류아동병원,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리, 과학기술전당, 여명거리, 원산갈마지구 등이다.

북한이 1990년대 후반 겪었던 혹독한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의 종식을 선언(2000년 10월 3일)하거나, 김일성 주석의 생일 등 각종 기념일에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 차원에서 정론을 싣곤 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 사망일(8일) 직후 건축물을 동원해 김 위원장 띄우기에 나선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날 정론이 주목받는 건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만나 실무협상을 재개키로 하고, 양측이 협상 장소와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의 ‘위대성 교양’을 위한 대내적인 목적과 동시에 미국에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론은 “우리 국가(북한)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결의’들이 채택될 때마다 우리는 건설의 전구를 더 넓게 펼쳤고 일촉즉발의 위기가 때없이 조성되는 긴장한 정세속에서도 조국보위초소를 지켜선 정예부대들을 인민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건설전투장으로 급파했다”고 주장했다. 강력한 대북제재 속에서 2017년 완공된 여명거리를 두고는 “적대세력들의 가혹한 제재, 봉쇄와의 대결, 대자연의 재난을 가시기 위한 투쟁을 동반하는 속에서 규모와 공사량에 있어서 미래과학자거리에 비해 두배가 훨씬 넘는 거리를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떠세운(일으켜세운) 신화”라고도 했다.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사를 차질없이 진행해 왔으며, 오히려 기적 같은 축시법 처럼 기간도 단축했다는 의미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북한이 강력한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끄떡없이 성과를 올렸다고 과시하려는 차원”이라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무용론을 강조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이 대폭 양보하지 않으면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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