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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성 "남편, 날 샌드백 치듯 때려···죽을까봐 참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부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돼 논란이 일었다. [뉴스1]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부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돼 논란이 일었다. [뉴스1]

한국인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베트남 이주여성 A(30)씨가 베트남 현지 매체 '징'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이 샌드백 치듯 나를 때렸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매체는 이날 진행한 A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했다.

A씨는 "남편이 옛날에 권투를 연습했다"며 "맞을 때마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처음에는 참았지만, 이번에는 (폭행이) 너무 심해서 경찰에 신고했다. 갈비뼈와 손가락이 부러졌다"고 밝혔다.

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A씨는 5년 전 남편 B(36)씨를 전남 영암군 한 산업단지 회사에서 만나 교제했다. B씨는 당시 한 차례 이혼 후 두번째 가정을 꾸린 상태로 A씨와 2년 간 내연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2016년 초 A씨가 임신 사실을 알렸다. 첫번째, 두번째 부인 사이에서 각 한 명씩 두명의 자식이 있던 B씨는 "아들이면 낙태하라"고 A씨에게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A씨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낙태를 강요하는 B씨를 피해 2016년 4월 베트남으로 돌아가 혼자 아이를 낳았다"고 밝혔다. B씨는 지난 4월 '아이가 보고 싶다'며 베트남에 가서 A씨와 아들을 만나고 아들의 친자확인 검사를 했다. B씨는 당시 베트남에서도 A씨를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더는 때리지 않겠다'는 남편의 약속을 믿고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나 '같이 살자'던 B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돼 A씨를 폭행했다.

A씨는 "남편이 저에게 무엇을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제가 못 알아듣고 다른 것을 가져갔다가 폭행당하기 시작했다"며 "영상에 나오는 것은 아주 일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제 친구들도 남편에게 많이 맞았지만, 한국말이 서툴고 경찰이 한국인 편이라는 우려가 앞서서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저도 샌드백처럼 맞았지만 증거가 없어 신고하지 못했었다"고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두 살배기 아이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6일 A씨 지인이 페이스북에 폭행 장면이 찍힌 영상을 올리며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4일 촬영된 이 영상에는 B씨가 전남 영암군 자신의 집에서 A씨를 주먹과 발 등으로 폭행한 장면이 담겼다. 사건 현장에는 두 살배기 아들도 함께 있었다. 이 영상은 A씨가 직접 아들의 가방 속에 숨긴 카메라로 몰래 촬영했다. A씨는 경찰에서 "그 전에도 남편에게 계속 맞아 (사건 당일) 아들 가방을 치우는 척하면서 내 휴대전화를 가방에 꽂아놨다"고 말했다. A씨는 이 영상을 지인에게 보여줬고, 지인이 A씨를 대신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오전 8시7분쯤 "A씨가 남편에게 맞았다"는 A씨 지인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지난 6일 B씨를 긴급 체포했다. A씨 지인은 경찰에서 "A씨가 남편에게 많이 맞았는데 한국말을 잘 못해서 내가 대신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 폭행으로 A씨는 갈비뼈 등이 골절돼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폭행 당시 어머니 곁에 있던 아들은 A씨가 돌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베트남 언론을 통해 현지에까지 보도됐다. 베트남에선 한국 정부에 B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민사회에선 이번 사건이 베트남의 '반한'(反韓)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열린 또 람 베트남 공안부 장관과의 치안총수 회담에서 "철저한 수사와 피해자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정부서울청사에서 또 람 장관을 접견하고 "앞으로 한국에 사는 베트남 국민의 인권보호와 안전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며 "많은 국민들이 상대방 국가에 사는데, 양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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