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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데려온 2살 아들 앞서 베트남 부인 무참히 때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인 남편이 두 살배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베트남 출신 부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동영상은 영상 속 피해 여성이 몰래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영상을 맨 처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람은 피해 여성과 같은 국적의 지인이었다. 이 지인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문제의 남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건추적] '폭행영상' 드러난 일그러진 사랑 #아내 "아들 가방에 휴대전화 꽂아 몰래 찍어" #"상습 폭행…화나면 무조건 '잘못했다' 빌어" #남편 "같이 살자" 3월 혼인 신고…6월 입국

8일 전남 영암경찰서에 따르면, 해당 영상에 나오는 남녀는 영암군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A씨(30)와 한국인 남편 B씨(36)다. 우는 아이는 A씨 부부 아들(2)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6일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 등으로 A씨를 폭행해 상해를 입히고 아들에게 겁준 혐의(특수상해·아동학대)로 B씨를 긴급 체포하고, 이튿날(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B씨는 지난 4일 오후 9시쯤 영암군 자신의 집에서 A씨를 소주병으로 폭행하고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린 혐의다. 또 아들에게 정서적 충격을 안긴 혐의도 받고 있다.

아동학대 이미지 [연합뉴스]

아동학대 이미지 [연합뉴스]

A씨는 남편의 폭행으로 전치 4주의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들은 A씨가 돌보고 있다. A씨 모자는 병원 치료가 끝나면 별도 쉼터로 옮길 예정이라고 경찰 측은 밝혔다. 도대체 A씨 부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 2016년 초 한국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그해 5월 임신한 A씨는 연말에 혼자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아들을 낳아 홀로 키우던 A씨는 지난달 19일 결혼 비자로 입국했다. 앞서 B씨가 올해 3월 혼인 신고를 한 지 석 달 만이다. B씨는 지난 4월 '아이가 보고 싶다'며 베트남에 가서 A씨와 아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 이후 '같이 살자'며 A씨 모자를 한국에 데려왔지만, 한 달도 안 돼 폭력을 휘둘렀다.

일명 '베트남 부인 폭행'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지난 6일 A씨와 같은 베트남 출신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퍼졌다. A씨 지인은 게시물에 베트남어로 "한국 남편과 베트남 부인 모습. 한국 정말 미쳤다"고 적었다. 페이스북 측은 폭력성이 심해 영상을 삭제했지만, 누리꾼들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상을 퍼나르며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2분 33초 분량의 영상에는 웃통을 벗은 B씨가 A씨의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담겼다. A씨가 머리를 감싼 채 거실 구석에 웅크려도 B씨는 머리와 옆구리 등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B씨는 때리는 내내 'XX새끼야' 등 욕설을 퍼부으며 "음식 만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여기 베트남 아니라고 했지?" "치킨 와, 치킨 먹으라고 했지?"라고 윽박질렀다.

기저귀를 찬 아들이 A씨 옆에서 "엄마, 엄마"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B씨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A씨 곁을 지키던 아들도 B씨의 폭력이 거세지자 저만치 달아났다. B씨의 폭행이 그치자 A씨는 아들부터 품에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달랬다.

A씨는 경찰에서 "그 전에도 남편에게 계속 맞아 (사건 당일) 아들 가방을 치우는 척하면서 내 휴대전화를 가방에 꽂아 침대 맞은편에 세워뒀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자신과 제일 친한 베트남 친구에게 먼저 해당 동영상과 피해 사실을 알렸고, 그 친구가 다시 베트남 지인(신고자)에게 알렸다. 그 지인이 (동영상을) 보고 '(폭력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이런 건 신고해야 한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동영상도 올렸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오전 8시 7분쯤 "친구(A씨)가 집에서 남편에게 맞았다"는 A씨 지인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A씨 지인은 경찰에서 "A씨가 남편에게 많이 맞았는데 한국말을 잘 못해서 내가 대신 신고했다"고 말했다.

B씨의 폭행은 상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폭행 말고도 3월 말 차 안에서도 A씨를 때렸다고 한다. A씨는 경찰에서 "평상시에도 남편이 때릴 듯이 많이 위협했다. 그래서 남편이 화가 나면 무조건 (서툰 한국어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싹싹 빌었다"고 진술했다.

B씨는 경찰에서 "아내를 때린 건 맞지만, 소주병으로는 때리지 않았다. 술에 취해 페트병으로 때린 건 기억 난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아들을 직접 때리는 등 신체적 학대는 확인이 안 됐지만, 정서적 학대는 해당 영상만 봐도 충분히 입증된다"며 "B씨도 '애엄마(A씨)를 때릴 때 아이를 안고 있어 간접적으로 (아들이) 맞은 적은 있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A씨가 불법 체류자 신분 아니냐' '그러면 남편을 처벌 못 하는 것 아니냐'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A씨는 결혼 비자로 입국한 데다 설사 불법 체류자라 하더라도 범죄 피해자여서 출입국관리사무소 통보 의무가 면제된다"고 했다.

영암=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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