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이후 첫 북ㆍ미 실무협상 가시권…관전포인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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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담판’으로 하노이 이후 4개월여 간 멈춰섰던 북ㆍ미 대화에 극적인 돌파구가 생기게 됐다.

美 비핵화 로드맵 VS 北 영변폐기안 접점은 #비건 "유연한 접근" 언급, 미국 달라졌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2,3주 내에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작 북한은 4일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북한 해외노동자 송출금지 압박에 대해 비난하는 성명을 내는 등 겉으로 보기엔 판문점 이전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향후 실무협상은 북ㆍ미가 극명한 입장 차를 확인한 하노이 회담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 된다. 북한은 ‘영변 핵폐기안 대 제재 해제’ 교환을, 미국 측은 비핵화의 최종 상태(end state)를 포함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에 방점을 뒀다. 양측이 서로 입장을 얼만큼 좁힌 방안을 들고 나설지가 관건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협상 관련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뉴시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협상 관련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뉴시스]

①장소는 스웨덴·태국·판문점 거론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면 북ㆍ미 양쪽에서 ‘상대방의 홈그라운드’라는 인식이 덜 한 장소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미 중 한 국가에서 스웨덴을 후보지로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단 외교부 당국자는 스웨덴 개최설에 대해 “실무협상 장소까지 거론하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간 논의”라며 이를 부인했다. 스웨덴은 서방 국가 중에선 평양에 공관을 두고 있고 협상 유치에도 적극적인 나라다. 지난해 11월 최선희 외무성 당시 부상과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상견례’를 한 곳이다.

판문점과 평양은 장소 선정 과정에서 제3국과의 조율 과정이 단축되고 북측이 심적으로 부담을 덜 느낀다는 점에서 자주 거론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실무협상을 조속히 개최하기 위해선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약 2주 앞두고 진행된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은 판문점에서 이뤄졌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의 사전의제 조율도 평양에서 이뤄졌다.

국내 외교ㆍ안보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이 재외공관을 두고 있는 태국이나 싱가포르, 몽골 등 아시아권 국가들 중에서도 북ㆍ미 회담 유치에 관심을 보이는 나라들이 있다고 한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2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남북미 회의를 마치고 현지의 북한 대사관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2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남북미 회의를 마치고 현지의 북한 대사관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北 실무협상 세번째 '선수 교체'

북한은 지난달 판문점에서 미국 측에 “실무협상 책임자가 정해졌다”고 알렸다. 하노이 회담 때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카운터파트였던 김혁철 전 스페인 대사에서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로의 교체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 전 대사는 6자회담에 관여했고 지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베트남 대사로 협상 전 과정을 지원한 인물이다.

김 전 대사가 나서게 되면 북한으로써는 세 번째 ‘선수 교체’를 하는 게 된다. 외교가에서는 “누가 나서든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개인적인 변수가 크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반면 미국 측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비건 대표 라인이 그대로 나선다. 미 정부 내에서 비교적 대화파를 대표하는 이들인 만큼 이번 실무협상에서 북측에 '통 큰' 양보를 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일 오전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주베트남북한대사관에 김명길 대사가 출근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주베트남북한대사관에 김명길 대사가 출근하고 있다. [뉴스1]

③비건 "유연한 접근" 대 "또 다른 '미스 커뮤니케이션' 우려"  

북ㆍ미 실무협상은 조만간 열릴 예정이지만, 외교가에서는 비핵화와 관련해 실질적인 진전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더 많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이 원하는 건 줄곧 비핵화 로드맵 합의였고, 하노이 회담 전후로 이같은 미국의 입장이 변화했다는 징후를 아직까지는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전직 고위 외교부 당국자는 “비건 대표가 '유연한 접근'을 거론했던 만큼 미국이 로드맵에서 제재 완화 시점을 앞당긴다든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비핵화의 최종 상태 설정이라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북·미 간 또 다른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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