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87% "사내 '월급루팡' 있다"…'부장급' 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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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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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20년차 A부장은 오전 9시에 출근해 9시30분에 팀 회의를 소집한다. 직원이 하드카피로 뽑아온 회의 자료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맞춤법 등을 지적하는 ‘훈수’를 둔다. 이미 마무리 단계의 사업 핵심 사항에 대한 숙지가 돼 있지 않아 회의 시간은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느라 1시간을 보낸다. 회의가 끝나면 직급이 가장 낮은 직원을 통해 점심 메뉴를 정하게 한다. 점심 이후 주가 흐름을 확인하고 온라인 뱅킹으로 은행 업무도 처리한다. 오후 2시, 상무 보고를 들어가야 한다면 담당 직원을 불러 1시간 동안 브리핑을 받는다. 4시부터 15분간 보고한 뒤 퇴근 시간까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으면서 재충전한다. 퇴근 시간 직전에 “일이 많아 야근해야 한다”며 저녁을 함께 먹을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본다.

"월급을 내 놓아라"

"월급을 내 놓아라"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사내에 이런 형태의  ‘월급 루팡’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는 가장 ‘월급루팡화’가 많이 된 직급은 부장급이라고 답했다.

10명 중 7명은 "나도 월급루팡일 때 있어"

‘월급 루팡’이란 월급과 도둑의 대명사인 프랑스 추리 소설 주인공  아르센 루팡을 결합한 단어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을 빗댄 말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0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6%가 직장 내 월급루팡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29.6%가 월급루팡을 가장 많이 하는 직급으로 ‘부장급’을 꼽았다. 이후 ‘과장급(24.4%)’, ‘차장급(18.7%)’, ‘주임ㆍ대리급(13.4%)’, ‘임원급(8.7%)’, ‘사원급(5.2%)’ 순이었다.
또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자신을 월급 루팡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인 이모(26)씨는 “매일 월급 루팡하는 상사를 보면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가끔 나도 똑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상사는 저렇게 일하고도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러한 월급루팡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떠넘긴다(복수 응답 가능, 33.7%)’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일은 안 하고 계속 딴짓만 한다(25.9%)’,  ‘일정을 항상 뒤로 미룬다(18.3%)’, ‘자주 자리를 비운다(13.5%)’,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3.9%)’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월급 루팡과 관련, 응답자 중 43%가 ‘업무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업무 결과에 지장이 없다면 상관없다’도 31.9%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철저한 인사평가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25.1%나 됐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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