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간 트럼프, 볼턴 대신 옆 자리 차지한 '이 사람'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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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비무장지대(DMZ) 방문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이 동행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까지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봤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북·미 정상의 회동을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미국 폭스뉴스의 앵커 터커 칼슨(50)이다.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 볼턴 대신 트럼프 동행 #"영화의 한 장면" "트럼프 아니면 못할 일" 극찬 #'매파' 볼턴과 대립각..트럼프 이란 공습 단념토록 조언

미국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 [AP=연합뉴스]

미국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 [AP=연합뉴스]

폭스뉴스에서 정치토크쇼 ‘터커 칼슨 투나잇’을 진행하는 칼슨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DMZ 방문에 동행해 마치 당국자처럼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자유의 집’ 회담장 바로 앞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같은 시간 볼턴 보좌관은 서울을 떠나 몽골의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중이었다.

미국 정치 저널리즘 웹사이트인 TPM(Talking Points Memo)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럼프가 볼턴 대신 칼슨을 북한에 데려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언론인인 칼슨이 최근 볼턴 보좌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관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칼슨의 동행은 미국 기자들도 잘 몰랐을 정도로 은밀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폭스뉴스는 ‘폭스 앤드 프렌즈’ 프로그램에서 판문점에 있는 칼슨을 전화로 연결해 그가 현장에 갔음을 확인했다.

“김정은, 트럼프에 압도당했다”  

칼슨 앵커는 이날 방송에서 자신이 두 정상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들이 악수하는 장면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DMZ는 ‘지구의 끝’ 같았다”며 “두 정상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를 향해 걸어가 만났다”고 묘사했다. 그는 또 가까이서 지켜본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며 “폐기종 환자처럼 쌕쌕거리며 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판문점 방문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터커 칼슨(왼쪽 카메라 옆 인물). [사진 CBS뉴스 화면 캡처]

트럼프의 판문점 방문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터커 칼슨(왼쪽 카메라 옆 인물). [사진 CBS뉴스 화면 캡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고 전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이 일은 아마도 그가 아니었고, 그의 남다른 정치·사고 방식이 아니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은 자신보다 키와 덩치가 큰 트럼프에 약간 압도당한 것 같았다”며 “두 사람은 확실히 또래의 느낌은 아니었다. 형과 아우가 만나는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칼슨은 또 이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합리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고 의회전문매체 더 힐 등이 1일 보도했다. 그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혐오스러운 곳(disgusting place)”이라고 표현하면서도, “그러나 나라를 이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북한뿐 아니라 우리와 동맹을 맺은 많은 나라에서도 잔혹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공격 주장하는 볼턴에 “관료적 촌충” 

잡지 ‘더 위클린 스탠다드’와 방송 CNN, MSNBC 등을 거친 칼슨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 언론인이다. 특히 외교정책에 있어 불간섭주의를 내세우는 정통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칼슨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직접 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2일 이란이 미국의 무인정찰기를 격추시킨 데 대한 대응으로 군사 공격을 계획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철회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인물이 칼슨이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그는 방송에서 “(볼턴과 같은) 매파들의 말을 듣고 공격을 한다면, 재선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트럼프에게 조언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이런 의견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30일 서울을 떠나 몽골을 방문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왼쪽). [사진 볼턴 보좌관 트위터 캡처]

지난달 30일 서울을 떠나 몽골을 방문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왼쪽). [사진 볼턴 보좌관 트위터 캡처]

그는 당시 이란 공격을 주도했던 볼턴 보좌관을 “관료적 촌충(bureaucratic tapeworm)”이라며 자신의 방송에서 맹렬히 공격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DMZ에 볼턴 대신 칼슨을 데려간 것은 볼턴에 반감을 표출해 온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조처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대북 문제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볼턴 보좌관을 “전쟁광신자” 등으로 표현하며 노골적으로 비난해왔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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