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막아놓고 제조업 르네상스?...바보야 문제는 규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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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부산공장 클린룸 전경. [연합뉴스]

삼성전기 부산공장 클린룸 전경. [연합뉴스]

#. 디스플레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A사는 최근 신성장 기술설비에 투자하고 세액공제를 받고자 했으나 마음을 접어야 했다. 신성장 설비투자로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규정상 전체 연구·개발(R&D) 비용 중 신성장 부문의 R&D 비용이 10%를 넘어야 하는데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A사의 재무팀 담당자는 "기존 R&D 비용이 너무 커 새로운 투자분야인 신성장 R&D 부문을 기준까지 높일 수 없었다"며 "이러한 규제가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 물류 대기업 C사는 2017년 생산성 향상시설에 2900억원 투자해 80억원 공제받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비슷한 규모인 2800억원을 투자했지만 공제받은 금액은 28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C사 회계부서 담당자는 “세액공제율이 갈수록 줄면서 향후 시설투자 확대 유인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제조업을 다시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창했지만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세법개정 없이는 제조업 르네상스 구상도 공염불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일 '2019년 조세제도 개선과제 건의문'을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조세 환경을 마련해달라는 제언이 담겨 있다. 20대 국회 들어 상의가 국회와 정부에 제출한 16번째 건의다. 상의의 이번 건의안에는 ▲신성장 시설투자 세제지원 요건 완화 ▲신성장 R&D인정범위 확대 ▲R&D 세액공제율 인상 등 94개 과제가 담겼다.

상의는 '신성장기술 사업화 투자 세제지원제도'의 공제요건 완화를 건의했다. AI, 자율주행차 등 173개 신성장기술에 투자하는 R&D 비용에 대해 투자액의 5∼10%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공제요건은 매출액 대비 전체 R&D 비중이 2% 이상이어야 하고 전체 R&D 대비 신성장 R&D 비중이 10% 이상이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A사 사례처럼 산업 현장에선 조건 충족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년 신성장 R&D 세액공제 신청기업 수는 일반 R&D 신청기업(3만 3614개)의 0.66%에 불과한 224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성장기술 사업화 투자 세제지원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오후 안산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오후 안산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가 바뀔수록 줄어드는 일반 R&D세제지원도 문제다. 2013년 대기업 기준 최대 6% 수준이었던 일반 R&D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지난해 최대 2%로 축소됐다. 5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기업정책팀 팀장은 “경쟁국인 영국(최대 11%), 일본(최대 14%), 프랑스(연간 1억 유로까지 30%)에서는 일반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추세”라며 ”일반 R&D 세액공제율을 당기 발생액 기준의 3∼6%, 증가액의 40%까지 상향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이러한 혜택도 이르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생산성향상시설 투자 세액공제는 올해 말, R&D,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2021년 일몰 예정이기 때문이다. 상의는 올해 말 일몰 예정인생산성향상시설과 안전설비 등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제도를 2021년 말까지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신분야의 한 기업 관계자는 “설비투자 세액공제가 기업 내부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결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며 “세액공제율 확대가 투자를 늘리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러한 결정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일몰은 연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정부가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 제조업 르네상스로 방향성을 제시한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를 늘리도록 하려면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등 유인책이 전적으로 필요하다"며 "기존 제조업이 중국 등 경쟁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R&D 투자를 통해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기업 처지에서는 세제혜택이 절실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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