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얌체 무역"에 미 불만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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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과 일본 두나라간의 관계가 경제마찰을 중심으로 부시행정부 등장이후 더욱 소원해지고 있다.
태평양안보의 공통적인 이해로 군사적 분야까지 긴밀한 유대를 유지해온 양국의 사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 측의 주장에 따르자면 일본의 자국시장에 대한 폐쇄적인 경제시책 운용이 주인인 것으로 지적된다.
이 같은 대일개방압력 주장은 미국내의 재계·학계·언론계 및 각료들 사이에까지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데 우선적인 관심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 근거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선 이래 미국과 서유럽국가간의 무역불균형폭이 반감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5백20억 달러에 이르는 불균형은 거의 좁혀지지 않고 있는 점을 들고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7월 중순 해리스 여론조사기관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8%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요인으로 소련의 군사력보다 일본의 경제적 비대를 꼽았다.
이 기관이 지난 85년에 실시한 같은 내용의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결과가 54%였던데 비하면 미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은 몇년사이에 빠른 속도로 증폭되어온 셈이다.
더욱이 경제적 면에서 미국이 일본에 밀리는 이유가 자국의 경영이 부실해서나 상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관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어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미국의 악화일로에 있는 대일감정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측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 외무성의 고위관리가 『미국의 일본에 대한 감정악화는 확실하다』는 공식논평을 최근 내놓기도 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불만은 월리엄 아키 상공회의소부회장의 다음과 같은 진단으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역조문제는 우리 기업인들이 얼마나 친절한가, 우리 근로자들이 얼마나 애써 일하는가, 얼마나 꾸준히 거래를 해왔는가, 연구개발비로 얼마를 투자했느냐 등과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일본의 시장원리를 무시한 거래에 있다.』
그뿐이 아니다. 대일감정론자들은 일본시장에서 미국의 슈퍼컴퓨터·반도체·합판 등 경쟁력 있는 상품의 일정비율의 시장점유를 일본이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높은 보호장벽이 쳐져있는 금융·건설·보험 등의 분야에 대해서도 양국 간에 상호개방이 같은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만약 일본이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벌칙으로 일본상품의 수입을 막아야 한다고까지 극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이 자율적으로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자동차·철강제품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개방론자들은 이에 덧붙여 일본이 자국농민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건축을 위축시키는 케케묵은 토지이용정책도 개혁해야 되며, 그룹계열사에 적용되고 있는 「엄한」그룹사 제품사용 제한도 풀어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미일양국의 관계가 자칫 경제적 마찰로 완전히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런 미국 측의 의식전환에 대해 일본인들은 그들대로 못마땅해 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을 앞서고, GNP는 소련보다 커져 미국의 60%에 이르고 있는 일본은 이 같은 미국의 불만에 대해 노골적인 경멸조차 감추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특히 앞으로 장기간 희생을 감수하고 노력을 하면 세계무대의 중앙에 우뚝 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복잡한 국내사정으로 적지 않은 고심을 하고 있다. 정치 쪽의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참의원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참패로 앞으로 적어도 수개월동안은 대외정책마저 불투명한데다 더 이상 자민당 1당 독주가 보강되리란 전망도 없다.
이 때문에 당분간은 미국인들의 폐쇄적인 일본시장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일본재계일각에서는 최근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미국의 개방압력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 본질적인 가치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일찍이 경험치 못한 최악의 사태』라고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결국 미국과 일본의 무역전쟁은 일본이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의 곤경과 자존심을 감안, 과감한 시장개방을 추진해야 종식될 전망이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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