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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부품 상자 열었더니 권총 실탄 제조기가…밀수의 진화

중앙일보

입력

올해 1월 관세청 부산본부세관에 적발된 권총 실탄 제조기. [사진 관세청]

올해 1월 관세청 부산본부세관에 적발된 권총 실탄 제조기. [사진 관세청]

감시 느슨한 저가 수입품 위장해 불법 무기 반입 

관세청 부산본부세관은 올해 1월 희귀한 밀수품 하나를 적발했다. 자동차 부품으로 신고됐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권총 실탄 제조기였다. 용의자들은 150달러 미만의 저가 수입품은 통관 검사가 느슨하다는 점을 악용했다. 세관의 통보를 받은 경찰은 이들을 체포해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권총 실탄 제조기를 밀수하는 일당이 있다는 것은 권총을 소지한 범인이 있다고 볼 수 있어 서둘러 경찰에 검거를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경을 넘어 불법 물품을 은밀히 들여오는 밀수 행위가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 X선 투시 장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두꺼운 철제 공작기계에 마약류를 넣는가 하면, 통관 검사가 느슨한 소액·전자상거래 물품으로 위장해 밀반입을 시도한다.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통한 마약 밀수도 증가하고 있다.

해외 직구 위장한 '국제우편' 밀수 269% 증가 

24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밀반입된 마약 단속 실적은 총 221건, 11만3111g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중량 기준) 늘어난 수치다. 여행자나 특송 화물 등을 통한 밀수 적발 건수는 줄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늘어난 경로는 해외 직구 물품 등으로 위장한 '국제우편'으로 26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아편→생필품→사치품' 경제 규모 따라 밀수도 진화 

시기 별 밀수 품목과 형태를 나열해 보면, 압축 성장한 한국 경제의 역사가 반영돼 있다. 19세기 영국과 중국 간의 제2차 아편전쟁(1857년)이 한창이던 개항(19세기 후반) 전·후에는 한국에서도 아편이 주요 밀수품 중 하나였다. 그러다 생활 물자가 부족했던 해방 이후에는 고추·콩·담배 등 생필품들이 중국 등으로부터 밀반입됐다. 치솟은 국내 물가 탓에 생필품 밀수업자들 극성을 부린 것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에는 특공대식 밀수 조직도 등장했다. 일명 '대마도 밀수 특공대'다. 이들은 자금 담당부터 해상 운반·양륙·육상 운반·보관·판매 담당 등 분업화한 조직도 갖췄고 세관감시선을 따돌릴 만큼 빠른 5~10t급 소형 선박도 밀수에 동원했다. 이들이 일본으로부터 밀반입한 생필품들은 부산 국제시장에 집하된 뒤 시중에 유통됐다.

1980년대 여행자유화로 일본 단체 관광객에 의한 '코끼리표 밥솥' 밀수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사진 관세청]

1980년대 여행자유화로 일본 단체 관광객에 의한 '코끼리표 밥솥' 밀수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사진 관세청]

1980년대에는 경제 성장으로 사치품 소비가 증가하면서 가짜 명품 시계가 밀수 적발 '단골' 품목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등이 밀수되기도 했다. [사진 관세청]

1980년대에는 경제 성장으로 사치품 소비가 증가하면서 가짜 명품 시계가 밀수 적발 '단골' 품목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등이 밀수되기도 했다. [사진 관세청]

고도 성장기인 70~80년대에는 밀수 방식도 '고급화' 했다. 국민 소득이 가파르게 늘자 다이아몬드 등 보석류와 밍크코트, 가짜 명품 시계 등 사치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78년 7월 마산항에선 세관원을 피해 바다 밑으로 숨었다가 다리와 겨드랑이에 찬 시계 무게(15㎏)를 이기지 못해 밀수범이 익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80년대에는 여행자에 의한 밀수 사건도 잦았다. 83년에 부산 주부교실 여행자들이 일본 '코끼리 밥솥'을 단체로 밀수한 사건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90년대에도 골프채와 상아,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 등도 주요 밀수품으로 등장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관세청 "내시경 카메라·인공지능 기술 활용해 대응 강화" 

2000년대 이후에는 의자 다리에 홈을 파 마약을 숨기거나 검사가 느슨한 국제우편 등을 이용하는 등 밀수도 지능적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관세청은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검사 기술을 강화해 이에 대응할 방침이다.

이종욱 관세청 통관기획과장은 "내년부터 세관원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투시 장비나 내시경 카메라 등을 실전 배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의심 물품은 입항한 뒤 국내로 반입하는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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