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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해외까지 와서 관광지만 돌 거니? ‘로컬리안’처럼 라이브 공연 즐겨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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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신풍속도 

“에펠탑 인증샷 찍었으니 몽마르트 언덕 보러 이동~.” 해외여행을 가면 명소·맛집에 발도장·눈도장 찍느라 하루가 모자라다. 하지만 샅샅이 여행해도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구경’하는 여행에 그쳤기 때문. 돌아보면 현지인과 나눈 대화라곤 음식 주문이 전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현지와의 소통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이전보다 한 발짝 더 들어가 현지인과 어울리고 그들처럼 살아본다. 이른바 ‘로컬리안’ 여행이다.

아드리아해를 품은 크로아티아의 남부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옛 시가지 풍경.

아드리아해를 품은 크로아티아의 남부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옛 시가지 풍경.

태국 ‘빠이’에서 요리 강습을 들은 노태연씨가 학생들과 함께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모습. [사진 각 여행자]

태국 ‘빠이’에서 요리 강습을 들은 노태연씨가 학생들과 함께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모습. [사진 각 여행자]

“북한에서 왔다고요?” 프랑스·스페인에서 온 외국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농담이에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제야 웃음을 되찾은 외국인들이 말한다. “강남스타일 싸이 팬이에요.” 프리랜서 노태연(35)씨의 태국 여행 중 있었던 일화다. 노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부모님과 태국 북부 지역인 ‘빠이’를 여행했다. 마을을 둘러보다 태국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쿠킹 클래스를 신청했고, 외국인 여행객들과 요리를 배우고 식사하며 추억을 쌓았다. 그가 들은 수업은 오전에 요리를 배우고 점심을 함께 먹는 코스. 수업은 장을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 같이 ‘툭툭이(삼륜차)’를 타고 ‘람빠이 마켓’으로 이동해 태국 식료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쏨땀(태국 파파야 샐러드), 그린커리, 팟타야, 망고라이스 요리법을 배운다. 모든 과정은 영어로 진행돼 현지어를 못해도 걱정 없다. 노씨는 “여행이 끝나면 ‘OO봤다’는 것보다 ‘OO해 봤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며 “다음번엔 코끼리를 타고 소수민족 마을을 여행하는 캠핑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로코 에사우이라 현지인 집을 방문한 배윤경씨와 여행길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

모로코 에사우이라 현지인 집을 방문한 배윤경씨와 여행길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

‘스페인 그라나다~말라가~타리파~모로코 탕헤르~쉐프샤우엔~에사우이라’. 휴직 후 스페인에서 학업 중인 배윤경(30)씨는 지난달 일주일간 모로코를 여행했다.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곳’을 여행하자는 목표에 적합할 것 같은 에사우이라를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이곳에선 출발 전 여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신청해 둔 ‘현지 액티비티’를 체험했다. 해변에서 말을 타고 전직 어부 ‘핫산’의 천막집에 방문하는 등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특히 빛도 안 들어오고 가구·TV도 없는 곳에 사는 핫산이 자신에게 전통차를 대접해 주고 해맑게 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배씨는 “현지인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을 경험하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며 “세계관을 넓히는 게 여행의 진정한 묘미”라고 회상했다.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지 만 30년이 지난 지금, 여행 트렌드는 크게 세 번의 진화를 거듭했다. 해외여행이 낯설었던 90년대엔 ‘패키지 여행’으로 가이드의 보호 아래 자국민 동행자들을 의지하며 여행했다. 빡빡한 일정을 따라 최대한 ‘많이 보기’ 여행을 했다. 해외여행이 익숙해진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 중반까지는 ‘내가 가고 싶고, 하고 싶은’ 자유여행이 대세가 됐다. 하지만 ‘비행기 값 아깝지 않게 길게, 여러 나라를 돌고 오자’라는 인식은 여전했다. 이후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저비용항공사(LCC)가 많아지면서 ‘한 나라만 짧게 깊이’ 여행하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여행이 인기를 끌며 보다 ‘자유로운’ 여행이 됐다.

 여기서 더 나아간 게 ‘현지에 스며들기’ 여행이다. 현지인과 어울리며 현지인처럼 체험하는 일명 ‘로컬리안’ 여행이다. 노씨나 배씨처럼 장소가 아닌 개인 취향에 따라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다. 이탈리아에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조식 투어’를 하러 가거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그래피티 여행’을 하러 가는 것이다. 실제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에 따르면 전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스포츠 트립’ 상품의 예약 건수가 전년 대비 380% 늘었는데 이 중 우리나라 여행자가 가장 많았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문화의 주역이 되면서 여행 트렌드가 바뀌었다”며 “이들은 대부분을 디지털 세계에서 보고 듣는 데 그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직접 체험하는 걸 선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색 있는 체험 여행상품 봇물

로컬리안 여행은 준비도 어렵지 않다. 여행가기 전 온라인으로 체험 상품을 쇼핑하듯 훑어보고 원하는 것을 고르면 끝이다. 여행사들마다 앞다퉈 현지 체험 상품을 강화하고 있고, 최근엔 ‘체험 상품’만 특화해 판매하는 여행 애플리케이션도 부쩍 늘었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은 전 세계 610여 개 도시에서 프랑스 파리에서의 자전거 여행, 라이브 음악 투어 등 1만5700개가 넘는 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와그’에서는 124개 도시에서 1만1000개 이상의 현지 액티비티 상품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다양한 앱에서 미식 투어, 전통 의상 체험, 공예 체험, 전문 포토그래퍼가 동행하는 스냅 촬영 등 지역 특색이나 여행자 기호에 맞는 수많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에어비앤비에서도 현지 액티비티 상품을 한층 강화했다. 지난달 200종류의 여행으로 구성된 ‘에어비앤비 어드벤처’를 출시한 것이다. 아프리카 부족 전사들과 사자 추적하기, 아마존 정글 탐험 트래킹, 광활한 미서부에서 카우보이의 삶 체험하기, 요르단의 고대 문명을 만나는 트레킹 등 지역의 특색을 담은 소규모 여행이 눈길을 끈다. 어드벤처를 이용하면 현지 전문가가 가이드가 돼 여행객을 이끌어준다.

유튜버 ‘슛뚜’는 모로코 마라케시 현지인 집에 머물며 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추억 쌓기를 했다.

유튜버 ‘슛뚜’는 모로코 마라케시 현지인 집에 머물며 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추억 쌓기를 했다.

에어비앤비 어드벤처를 통해 모로코 마라케시 지역으로 4박5일간 여행을 다녀온 유튜버 ‘슛뚜’는 “모로코 탐방은 물론 호스트의 집, 호스트 친구의 집 등을 방문하면서 현지인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며 “다른 문화권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면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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