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선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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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해복구 대도시 우선에 한숨>
곡창지대 호남평야와 김해평야 등 삼남지방이 수심으로 가득하다.
남부지방을 휩쓴 집중호우와 태풍 주디호의 잇따른 강타로 나주·김해평야의 올해 벼수확이 평균 30∼50%, 심한 곳은 80%까지 감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물이 빠지면 한 톨의 쌀이라도 건져보려고 벼포기 씻기에 전 가족이 동원, 더위조차 느낄 틈이 없다.

<감수 30%쯤 될 듯>

<호남평야>
곡창 전남의 올해 벼감수 예상량은 줄잡아 30%이상.
특히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나주군 일대의 논은 영산강의 범람으로 온통 흙탕물에 범벅이 돼 절반수확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전남지방의 경우 승주지방에 내린 5백99㎜를 비롯, 평균 3백14㎜의 비가 쏟아져 공식집계된 농경지 피해면적은 4만7천9백9ha다. 이는 도내 전체 농경지 20만3천ha의 23%에 해당된다.
특히 이번 수해는 이삭이 생기는 시기를 맞은 만생종 벼와 곧 이삭이 패는 조생종 벼 모두가 큰 타격을 받게됐다.
이삭이 아예 생기기 전의 벼와 이삭이 이미 팬 후의 벼는 물이 빠진 후 관리만 잘하면 큰 타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해를 당한 벼논 중 2천1백70ha는 아예 토사에 매몰되거나 논바닥이 떠내려 가버려 한 톨의 벼도 수확할 수 없게 됐다.
또 나주시 지역의 논 1천8백70ha 중 영산들과 가야들의 1천7백10ha(전면적의 91%)와 나주군 문평면 산호들과 다특면 조 등들 8천1백3ha(나주군 전체 논 면적의 54%)는 흙탕물 속에 2∼3일씩 잠겼기 때문에 30∼40% 정도의 감수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영산강 하류지방의 무안군일대도 총 재배면적 1만2백60ha 중 약 30%인 3천5백25ha의 논이 4일 가량 침수돼 50∼60%까지의 감수가 확실시되고 있다.
보성군 벌교읍 일대도 침수피해가 엄청나다.
집중호우와 여백만의 만조시간이 겹치면서 읍 전체와 주변 농경지 3천2백ha가 물에 잠겼는데 벌교읍 조성들의 경우는 5∼6일 동안 물이 빠지지 않아 벼농사는 거의 기대를 걸기조차 힘들게됐다.
한편, 가장 먼저 침수돼 물난리를 겪었던 장성읍 일대는 황룡강과 유탕천이 범람하면서 4천3백51ha의 논밭이 돌·자갈밭으로 변해 버려 도내 다른 지역과는 달리 피해액을 산출하기도 힘들 정도다.
김모씨(57·장성군 황룡면 와룡리)는 『와룡들에 있는 논이 모두 자갈밭으로 변해 앞으로 먹고 살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절반이 물에 잠겨>

<김해평야>
태풍의 영향으로 3백56㎜의 비가 쏟아진 김해평야 일대는 농경지 2만여ha 중 절반 가까운 9천2백ha가 물에 잠겼었다.
그중 김해군 한림면 장방리·금곡리·안하리 일대와 생림면이 작벌과 상동면 일대 논 3천2백ha는 3∼5일간 물에 잠겨 절반 가량의 감수 위기에 놓여있다.
경남도 재해대책본부는 이번 태풍으로 전체 벼 재배면적 14만9천ha 중 10%정도인 1만4천9백90ha가 침수돼 벼수확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중 7천ha정도는 침수기간이 하루미만이어서 큰 피해는 없지만 김해지방의 3천2백여ha는 심한 곳은 70%까지의 감수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김해지방 외에도 지난달 l6일과 25일의 호우로 거창·진양·산청 등지의 논 3천7백30ha가 침수·매몰·유실되는 바람에 이 지방의 쌀 수확량은 2만t가량 줄어들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김해군 한림면 안하리 안하마을 이장 배성현씨(45)는 『마을 앞 40정보의 논이 4∼5일간 침수되는 바람에 올해는 벼 한줌 만질 수 없을 것 같다』며 『고교 3학년인 큰아들의 대학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 마을 정해용씨(50)도 『1천5백 평 가량의 논이 침수돼 벼가 녹아 말라죽고 있어 결실을 볼 수 없게 됐다』며 5식구의 생계를 걱정했다.

<장비없어 손 못써>

<복구 및 지원대책>
전남도의 경우 응급복구는 끝냈지만 못쓰게된 농토를 다시 고르고 완전한 농지가 되도록 하려면 이제부터가 문제라고 농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농민들에 따르면 수해직후부터 시작된 복구작업이 대도시·공단지역의 도로나 시설물들에 우선적으로 실시되는 바람에 논바닥에 쌓인 토사제거나 작은 제방둑 등의 축조는 장비가 없어 손을 못 쓸 형편이다.
이 같은 현상은 김해 등 경남지방에도 마찬가지.
행정기관에서 밝히는 복구현황은 큰 시설물이나 주요도로, 큰 강이나 하천둑의 유실부분에 대한 것일 뿐 나머지는 농민들의 자력복구에 의존해야 한다.
침수된 논의 피해복구는 배수뿐만 아니라 배수가 된 이후 볏잎에 붙어있는 진흙 등을 털고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야만 복구가 끝나게 된다.
이 같은 작업은 일일이 사람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일손이 달리는 농촌의 실정으로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수해농가를 위한 행정당국의 지원대책도 대파작물의 종자대와 비료대 지원 등이 고작이다.
전남도는 이밖에 피해농가에 영농자금상환을 연기해주고 중·고교생이 있는 농가의 학비감면조치 등으로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에 온행정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병충해 방제비로 침수 논 1ha에 2만4천40원씩 지원한다.
경남도도 피해농가에 항공방제를 실시하고 농약을 무료로 제공하며학비·농지세·수세 감면조치를 해줄 계획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산발적으로 행해지는 대책보다는 완전한 배수장시설, 무너지지 않는 제방축조 등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바라고 있는 것이다.【나주=임광희 기자·김해=허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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