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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안전관리" 새 문제점|영광 경비원부인 "뇌없는 아이" 사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원자력발전은 가장 안전하다, 매우 위험하다-.』
소련 체르노빌원전 대참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원전의 안전성 논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전남 영광원전경비원 김 모씨(31)의 부인이 잇따라 두 차례나 무뇌기형아를 사산 또는 유산,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남편 김씨가 방사능 위험구역에서 보호무방비 상태 속에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완전 노출된 경험이 있어 경북 월성원전의 방사능 오염쓰레기 불법폐기 사건 이후 크게 문제가 돼온 국내 원전의 안전관리문제 등에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부인 박 모씨(28)가 뇌없는 영아를 첫 번째로 사산한 것은 지난해 11월 12일.
박씨는 영광 기독병원에서 임신 9개월만에 무뇌기형아를 사산했었다.
지난 1월께 다시 임신한 박씨는 임신 5개월 째부터 이상을 느끼기 시작, 지난 달 30일 영광종합병원을 찾아 X선·CT촬영 등 정밀검사를 한 결과 이번에도 무뇌기형으로 밝혀져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유산한 것이다.
박씨가 사산한 영아의 경우 거의 완전한 신체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나 머리 맨 위쪽 뒷부분이 제대로 발육을 못해 밋밋했으며 가운데부분 지름7㎝가량이 둥그렇게 연분홍색을 띠고 있었는데 이번 유산시킨 태아도 똑같은 부분의 머리이상이었다.
영광원전 마을인 전남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양지부락이 고향인 남편 김씨는 6남1녀 중 5남으로 키 1m71㎝, 몸무게 66㎏의 보통 체격으로 82년 5월 군(육군 포병)에서 만기 제대한 후 농사일을 돕다 86년 같은 마을 박씨와 결혼, 이듬해 2월 첫딸을 낳아 3년째 정상으로 키우고 있다.
김씨는 87년 3월 영광원전의 연차 정기보수공사 때 일당 6천5백원의 잡역부로 취업, 원전서 일하기 시작했다.
87년 3월 27일, 88년 4월에 20일, 8월과 9월 44일간 등 모두 91일간 발전시설 부품교체작업 등에 보조원으로 일한 김씨는 건강했던 예년과는 달리 이후부터 코피를 자주 흘리고 현기증 등 원인 모를 증세로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87년 3월 27일간 원전에서 일할 때 방사능 관리구역인 1차 에너지 구역에서 방호복도 입지 않은 채 평상복 차림으로 한나절정도 일해 방사능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하고 있다.
김씨가 부인의 두 번에 걸친 사산 또는 유산과 관련, 방사능 공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원전 취업 후 심할 때는 하루에도 2, 3차례나 코피를 쏟는 등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데다 원전 취업 후 임신에서 모두 문제가 발생한 때문.
김씨 부부는 부계나 모계 모두 기형아에 관련된 출산을 한 적이 없는데 아내의 두 번째 유산으로 심적 고통을 견디다못해 지난 5월 사의를 밝히고 30일부터 출근을 않고 있다.
김씨는 『우리 같은 불행한 부부가 다시는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면서 자신들을 포함한 영광원전부근 주민들에 대한 정밀 건강진단 등 대책을 호소했다.
한편 영광원전 마을 2백97가구 3천여 명의 주민들은 「주민이주 및 생계대책위원회」(위원장 김상일·48)를 결성, 지난해 하반기부터 영광 3, 4기 건설반대 등을 주장하며 열렬한 시위를 벌이는 등 원전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주대책 요구 등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작년 초부터 원전 측에 주민건강진단이라도 1년에 두 차례씩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반응이 없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영광원전의 안전대책 및 주민보호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광=임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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