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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도 멀어졌다…교역 -9%, 투자 -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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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9월 25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미국 뉴욕 파커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25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미국 뉴욕 파커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서 물류업체를 운영하는 A사는 일본의 통관 지연에 속앓이 중이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통관 절차에 1~2주가 더 걸린다”며 “답답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 허탈하다”고 말했다.
#한국산 제품을 판매하는 일본법인 B사는 최근 자사 제품에서 한국산을 강조하는 문구를 뺐다. B사 관계자는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산 제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물건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판결 이후 위축 뚜렷 #일본, 한국증시 순매수 91% 감소 #기업들 “영업 환경 악화” 53%

53.1%.
지난 5월 일본 주재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에서 “한·일 관계 악화에 따라 영업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일본 나고야 한 대형 가전제품 판매장에선 “한국산 제품은 뒤로 빼라. 왜 한국산 TV를 일본 제품 앞에 전시하느냐”는 지적에 국내 한 대형 가전업체가 대책 회의를 열기도 했다. 기업들은 영업 환경이 악화한 분야로 신규 거래처 및 신사업 발굴의 곤란(37.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본 소비자의 한국산 제품 인식 악화(28.8%)가 뒤를 이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 교류 위축은 각종 경제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정치·경제적 상황에 가장 민감한 주식 시장을 시작으로 수출입 거래에 따른 무역수지와 직접 투자로 확산하고 있다.

한·일 경제 교류 위축 징후가 처음으로 확인된 건 지난해 10월 무렵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나온 지난해 10월 일본은 한국 주식 시장에서 '순매도 행진'을 벌였다. 지난해 10월에만 2040억원의 한국 상장 주식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중국은 각각 2830억원과 980억원의 한국 상장 주식을 팔았다. 일본의 순매도는 2017년 11월(1570억원) 이후 최대 규모였다.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형성된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관계 악화가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본의 한국 상장주식 보유 금액은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13조5360억원으로 지난해 수준(14조~15조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참여는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경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일본의 한국 상장주식 순매수 금액은 440억원으로 전년동기(5020억원) 대비 91.2% 감소했다. 한경연은 “같은 기간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7조1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8% 증가했다”며 “이는 최근 일본이 한국 주식 시장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일본과의 무역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수출과 수입을 포함한 일본과의 교역 규모는 461억5000만 달러(54조6000억원)로 전년동기(508억7000만 달러) 대비 9.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290억1000만 달러(34조3200억원)로 전년동기 대비 12.8% 줄었고, 수출액도 171억4000만 달러(20조2700억원)로 2.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세계 교역액이 3.2% 줄었다. 이와 비교해 무역 규모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미국과의 교역액은 각각 5.6%, 10.1% 감소했다.

그래픽=신재민·심정보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심정보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16년 이후 상승세를 이어 오던 대일본 수출액은 올해 1분기부터 꺾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대 일본 수출은 71억6325만 달러로 지난해 1분기(76억3354만 달러)와 비교해 5억 달러 가까이 감소했다. 대 일본 수입액은 지난해 1분기 142억2460만 달러에서 올해 1분기 121억6320만 달러로 20억 달러(2조3000억원) 이상 줄었다.

일본의 한국 직접 투자 감소 폭도 가파르다. 한경연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1분기 해외직접투자(ODI)는 1015억 달러(120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7.9%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는 6억7300만 달러에서 6억2800만 달러로 6.6% 줄었다. 한경연은 “일본의 해외투자에서 한국이 소외됐다는 점이 한·일 경제관계 악화 징후”라고 봤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같은 기간 일본의 아시아권 직접투자 증가율은 60% 수준이었고 중국에 대한 투자 증가율이 107%에 달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는 감소했다”며 “같은 기간 미국에 대한 일본의 직접 투자는 77.5% 늘었고 독일에 대한 투자도 35.1%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양국의 주요 교역품인 부품 소재 중심의 중간재 교역 규모도 대법원 판결 전후를 비교하면 감소폭이 확대됐다. 강제징용 판결 이전인 2018년 6~10월 교역 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3.8% 감소했지만 2018년 11월~2019년 3월까지 5개월간 양국 간 중간재 교역 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8.3%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는 “일본 기업이라면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릴 것”이라며 “한·일 경제교류 악화 원인에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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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오원석·윤상언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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