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국의 선율에 향수 달래며 환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한국남성성악가들의 웅장한 화음이 미주 서부지역 교민들을 열광시켰다.
지난달 21일(미국시간)부터 미주 서부지역 5개 도시 순회공연에 나선 솔리스트앙상블은 캐나다의 밴쿠버를 시작으로 미국의 시애틀(22일), 타코마(24일), 로스앤젤레스(28일), 샌프란시스코(30일)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끝냈다.
이들이 공연하는 도시마다 수많은 교민들이 몰려와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고국의 선율에 향수를 달래며 환호했다.
공연이 끝날 때는 성악가·교민 모두 감격해 굳게 재회를 약속하며 한차례뿐인 공연을 아쉬워했다. 솔리스트앙상블(지휘 나영수)은 오현명·안형일·박성원·박수길·김원경·엄정행 등 한국의 정상급 성악가 36명으로 구성된 남성합창단.
이같이 정상급 솔리스트들로 이뤄진 합창단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50∼60년대 KBS 합창단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모여 지난 84년 창단한 솔리스트앙상블은 1년에 한번씩 모여 정기연주회를 펼쳐왔으며 이를 통해 개성이 강한 서로 서로가 음악계에서 보기 힘든 인화를 다져왔다.
이번 순회공연에서 이들은 보통 합창단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폭발적인 성량과 능란한 테그닉을 바탕으로 한 남성합창의 참맛을 선보였다. 드넓은 공연장에 가득차 부풀어오르는 장엄한 하모니는 시종일관 청중을 압도했다.
이번 순회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미국 서부지역의 대표적 교민사회를 이루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공연.
지난 달 28일 오후 7시 30분 파사데나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공연에는 2천여명의 교민이 몰려들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공연은 다른 도시에서처럼 『평화의 기도』등 성가를 시작으로 『병사의 합창』등 오페라합창, 『보리밭』등 가곡, 『농부가』등 민요 등의 순으로 20곡을 불렀다.
대부분 클래식을 자주 접하지 못한 듯한 청중들은 처음에는 조용한 분위기였으나 오페라합창에 이어 가곡과 민요로 이어지자 서서히 열기가 돋워져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청중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앙코르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내자 솔리스트앙상블은 코믹한 분위기의 『여자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네』등 무려 4곡의 앙코르 송을 선사해야만 했다.
교민 김한규씨(41)는『가슴이 찡하도록 감동적인 시간이었다』고 감격해하며 『그동안 우리 교민사회에는 고국의 고급문화를 접할 기회가 너무나 적었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이날 공연에는 석우장·노형건·박정현씨 등 LA지역에 거주하는 성악가 11명이 합세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모두 솔리스트앙상블단원들과 지난날 함께 공연했던 동료, 선·후배들로 이날 공연을 더욱 감동적인 무대로 만들었다.
60년대에 솔리스트앙상블 단원들을 지도했던 바리톤 신경욱씨(56·텍사스 Tech대 교수)도 잠깐의 공연에 참가하고 격려하기 위해 멀리 텍사스에서 달려와 이채를 띠었다.
또 이날 공연에는 재미 신예 바이얼리니스트인 김미경양(16)이 찬조 출연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 1악장』을 연주, 갈채를 받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청중들은 출입구에 기다렸다가 공연장을 떠나는 단원들에게 사인공세를 펼쳤으며 많은 재미성악가들이 단원들과 오랜만에 해후를 나누며 담소했다.
이 같은 공연열기는 밴쿠버를 비롯해 시애틀·타코마·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밴쿠버와 시애틀에서는 솔리스트앙상블의 지난해 공연을 계기로 탄생된 아마추어 혼성합창단인 필그림합창단(지휘 석필원·39)과 에버그린합창단(지휘 김무웅·46)이 찬조 출연해 그동안 연마한 수준급 솜씨를 발휘해 힘찬 박수를 받았다.
노구를 이끌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순회공연에 참가한 오현명씨(65)는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며 『그동안 대중음악계에서 많은 해외공연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클래식 공연도 자주 열려야겠다』고 강조했다. 지휘자 나영수씨도 『우리의 순회공연이 교민사회에 참다운 우리문화를 보급하고 나아가 외국과의 문화교류에 좋은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솔리스트앙상블은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내년에는 유럽 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다.【로스앤젤레스=이창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