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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ㆍ시진핑이 그린 ‘화웨이 냉전 지도’…글로벌 눈치싸움 ‘엔드게임’ 돌입

중앙일보

입력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화웨이 리서치개발센터. [AP=연합뉴스]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화웨이 리서치개발센터. [AP=연합뉴스]

 “중국과 미국이 기술 냉전을 시작했다면 화웨이 제재는 ‘디지털 철의 장막’ 도입 신호탄이다.” (뉴욕타임스)

 화웨이 냉전이 조직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우방국들을 끌어들이자 중국이 러시아로 달려가 손을 잡았다. 전세계를 무대로 한 편가르기는 철의 장막이 견고했던 과거 냉전 시대를 연상케 한다.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선 구축에 대해 각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정리했다.

美 우방 5+1, “화웨이=보안 문제”

 현재까지 정부 또는 기업 차원에서 최소 한 번 이상 명확하게 화웨이 배제 메시지를 던진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 총 5곳이다. 우선 미국의 1급 동맹국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이하 FVEY)’ 소속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모두 반(反) 화웨이 노선으로 분류된다.

 FVEY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지구상 통신 감시 정보 등을 긴밀히 교류해 온 상호 첩보 동맹이다. 각 나라의 비밀정보국·중앙정보국 등이 참여해 국제사회 유력 인사들을 도·감청한 정황이 최근까지도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미국은 “화웨이 통신장비를 통해 국가기밀이 중국으로 새 나간다”고 주장한다. 첩보를 공유하는 FYEY 내부에서만은 화웨이 절대 불허 방침을 고수하려는 이유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화웨이 반대 노선에 적극 동참 중인 나머지 한 곳은 일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강력한 유대를 원하는 아베 신조 정권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화웨이 배제를 일찍부터 추진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작년 12월 화웨이표 LTE 장비를 전면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들어서는 “5세대(5G) 통신장비 사업에서도 화웨이를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대신 화웨이 경쟁사인 핀란드 노키아·스웨덴 에릭슨과 손을 잡았다.

中, 외교전 총력…유럽·아프리카 공략 

 이달 5~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러 기간에 열렸던 중·러 정상회담 최대 이벤트는 양국 간 ‘통신 동맹’ 출범이었다. 러시아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모바일텔레시스템스(MTS)가 6일(현지시간) 화웨이와 장비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까지 5G 서비스를 출범하기로 했다. 양국 최대 IT회사의 협약식에는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했다.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중국과 한 배를 탄 건 미국에 큰 위협 신호다. CNN 방송은 7일 “러시아와 중국이 차세대 인터넷 기술을 향해 함께 나아가기로 하면서 미국은 뒤처질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최근 여기저기서 전향적인 화웨이 수용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중국 우방이거나 현재 미국과 갈등노선을 걷는 나라들이 화웨이 살리기에 동참을 선언하면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 브라질 이동통신사 TIM이 이달 중 화웨이 장비를 이용해 5G 네트워크를 시범 운영한다고 보도했다. 해밀턴 모우라우 브라질 부통령은 “브라질 정부는 화웨이를 믿고 있으며, 화웨이의 선진기술을 되도록 빨리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지난달 24일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기술을 가진 통신 회사인 화웨이는 베네수엘라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0일 기자회견에서 "화웨이는 이미 30개 국가에서 45건의 5G 상업계약을 체결했다"며 "이 중엔 미국의 동맹국과 일부 유럽국가도 있는데 그 국가 이름은 (미국의) 마음이 아플까 봐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0일 기자회견에서 "화웨이는 이미 30개 국가에서 45건의 5G 상업계약을 체결했다"며 "이 중엔 미국의 동맹국과 일부 유럽국가도 있는데 그 국가 이름은 (미국의) 마음이 아플까 봐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 정부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최우선 전략 요충지로 삼아 화웨이 지원을 본격화할 태세다. 지난해 화웨이 글로벌 매출 1070억 달러(약 127조7366억원) 중 28%가 유럽 및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왔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기자회견에서 “화웨이는 지난 6일 현재 30여 국가에서 46건의 5G 상용 계약을 체결했다”며 “이 중에는 미국의 동맹과 일부 유럽국가도 있는데 이들 국가의 이름을 밝히면 (미국의) 마음이 너무 아플까 봐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보·경제 복잡…각국 치열한 수 싸움

 아직은 많은 나라가 명확한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다. 특히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이 ‘판단 보류’ 상태다. 미국 우방으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마저도 선뜻 한쪽 편에 서기를 꺼린다. 교도통신은 8~9일 일본에서 열린 G20 무역·디지털 경제장관 회의에 참석한 압둘라 빈 아메르 알사와하 사우디 통신정보기술장관이 “사우디는 열린 시장”이라며 모든 나라의 기업을 평등하게 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SCMP는 11일 “필리핀 정보통신부가 최근 화웨이의 장비를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에릭슨 등 유럽 장비보다 성능이 좋지만 가격은 30% 정도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동남아 국가들은 더욱 난감한 처지일 수밖에 없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캄보디아·인도네시아가 모두 중립을 얘기하며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가 최근 자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을 부인하고 있다.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어서 특히 의심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가 최근 자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을 부인하고 있다.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어서 특히 의심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보기술(IT) 시대에 통신은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안보 논리를 끌어들여 화웨이 제재를 정당화한다. 문제는 가격 대비 품질이 우선시되는 시장 논리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반(反) 화웨이 노선을 탄 뉴질랜드·영국 등지에서도 아직까지 화웨이를 공평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나온다.

 이는 미국 내에서조차 현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제재 접근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크레이그 앨런 미·중 기업협의회 회장은 11일 “낯선 사람이 당신 집 문을 두드렸는데, 그 사람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총을 쏠 필요는 없다”면서 현 상황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극단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마냥 판단을 유보할 순 없다. 냉전 시대의 도래는 곧 안보 제일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예전처럼 안보와 통상·경제가 분리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 한다”면서“이제는 안보 밑에 통상과 경제, 인적 교류가 모두 하위개념으로 들어가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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