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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행동파 사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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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정교 분리를 주장하거나 종교의 현실 참여를 부정적 시각에서 논의하는 지루한 논쟁을 되풀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종교적 구원이 현세를 떠난 내세에서만 추구되어야 한다거나 종교인의 현실 참여는 정치문제를 떠난 영적 세계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논리에 집착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저 어두웠던 불의의 시대를 의롭게 지탱해줬던 많은 종교인들의 헌신적 현실참여 덕택에 오늘의 가냘픈 촛불이나마 꺼지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최근 카톨릭 내부에서 일고 있는 정의구현 사제단의 움직임이 과연 오늘의 상황에 대해 올바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참여를 벌이고 있느냐에 주목코자 한다.
정의구현 사제단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모임」에서 강론형식으로 밝힌, 『사제단은 교회의 분열을 원치 않지만 불의의 시대에 침묵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 먼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신부의 북한 파견을 「유감」이라는 용어로 부정적 판결을 내린 지난달 27일의 주교단 결정에 정면으로 맞선 사제단의 문 신부 파북 추인 결정은 위계 질서를 가장 존중해온 카톨릭교회 내부의 분열적 도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사제단 소속 신부란 2백만 신도와 일상적으로 직접 만나 영적 길잡이 역할을 하는 최일선의 사목이다. 때문에 그런 분열의 조짐은 전국의 신도에게까지 파급된다는 점에서 이번 사제단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교회의 분열을 확산시키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불의의 시대에 침묵할 수 없다』는 두 번째 현실 인식 또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의 압제에서 벗어나 민주개혁으로, 비정상의 사회에서 정상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국민적 합의의 시대를 맞아 이를 동태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아예 「불의의 시대」로 규정해버릴 때 우리에게 남는 선택이 무엇인지 사제단은 잊고 있지 않은가.
이 과도기적 시대 흐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단간의 갈등과 계층간의 불화를 어떻게 조화롭게 화해시키느냐에 종교인의 역할과 기능이 강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확산하는 쪽으로 기운다면 어떤 종교, 어떤 종교인의 활동도 국민적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교회의 분열을 감수한 채 편협한 시국관의 출발 위에서 단식과 농성을 장기화한다면 민주화 시대를 향한 과도기적 분열과 갈등을 더욱 가열화 시키는 역할을 사제단 스스로 떠맡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불의의 시대에 그토록 드높이 강조되었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은 의로운 시대를 향해 진통을 겪고 있는 오늘의 분열과 갈등 속에서 더욱 강조되고 주장되어야할 사제의 메시지여야 한다. 문 신부의 북한 파견이 일부 성직자의 의견이 아니라 수십 수백 명 사제들의 결의였음을 강조하려는 집회는 마치 힘의 대결로 교회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정부와의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운동권식 힘 겨루기 투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사제단의 결정은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농성하는 신부들의 모습을 볼 때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옷을 벗고 나서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불의가 아닌 의로운 시대를 부르는 사제단의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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