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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日 25만원 韓 200만원…기가막힌 아토피 신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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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있는 박조은(29)씨는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가 지난해 9월 내놓은 중증 아토피 신약 ‘듀피젠트’에 건강보험 적용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이날 그는 “병원비 걱정 없애겠다던 대통령님의 약속, 아토피 환자에게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눈 앞에 치료제를 돈 때문에 못 쓰는 마음, 빚을 내서 약값을 내는 마음을 아십니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국회 정문 앞에 섰다. 평생 시위라고는 해본 적 없는 박씨가 길거리에 나선건 그만큼 사정이 절박해서다. 박씨는 “이전에는 잠을 하루 한시간도 못 잘 만큼 힘들었다. 듀피젠트를 쓰면서 사람처럼 살고 있는데, 비싼 약값에 언제까지 치료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간신히 약값을 마련하고 있다.

듀피젠트는 2주에 1회 주사하면 가려움증 등 아토피 증상이 획기적으로 나아지고, 부작용도 거의 없다. 문제는 약 값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주사제라 한달 200만원 가량 든다.

시위에 참여한 최정현(23)씨는 3년 전 양쪽 눈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10년 이상 아토피 약을 복용하다보니 생긴 부작용이다. 최씨는 “팔·다리 주름마다 진물이 흘러 하루종일 누워 지냈다. 지옥같은 세월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의 일상은 신약을 쓰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최씨는 “9개월간 경차 한대 값(1800만원)을 썼다. 4~6주에 한번 맞으면서 버티고 있다. 당장 약을 끊을 수도 없는데 부담이 너무 크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시위에 나선 환자들은 “일본에선 건보 적용이 돼 한달 25만원이면 쓸 수 있는 약을 우리는 200만원을 내야 한다”라고 외쳤다.

정부는 “듀피젠트의 건보 적용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약이 없다. 신약의 건보 적용을 앞당기기 위한 ‘위험분담제’라는 제도가 있다. 효과는 뛰어나지만 값비싼 신약에 건보를 적용하고, 제약사가 수익의 일부를 건보에 돌려주는 제도다. 하지만 환자 상태가 아무리 심각해도 아토피처럼 경증으로 분류된 질환에는 적용이 안된다.

나정임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얼마전 심한 아토피를 앓던 9살 아이가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서 응급실로 실려온 일이 있었다. 가려움증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괴로워하다 생긴 일이다. 아토피를 가볍게 여기지만, 심한 환자들은 직장을 가지거나 결혼을 하는 등 일상생활도 포기할 만큼 고통받는다”라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중증 환자들에게라도 제한적인 건보 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에 2022년까지 30조원을 투자한다. 비급여진료를 없애 건보 보장률을 현재 62%에서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이에 따라 선택진료비 폐지, 대형병원 2·3인실 입원비,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에 건보가 적용됐다. 혜택이 넓어진 다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테다. 하지만 한정된 재정을 투입할 때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는 따져야 한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만큼 아픈 환자들의 눈물부터 닦아주는게 사회보험의 존재 이유 아닐까.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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